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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쿠데타 1년,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기사승인 2017.09.13  14: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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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르포

이스탄불/아디아만 = 지난 7월 17일 터키 이스탄불 국제공항에서 터키 동남부에 위치한 도시인 아디아만으로 가기 위해 국내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터미널 한 가운데는 이틀 전인 7월 15일 터키 쿠데타 1주년을 맞아 터키 국민들이 쿠데타를 막아냈다며 축하하는 글과 당시 쿠데타를 반대하는 터키 사람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2016년 7월 15일 터키에서는 일부 군인들에 의해 쿠데타가 발생했다. 그날 터키의 수도 앙카라, 이스탄불 등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은 같은 날 밤 국영방송을 통해 주요 국가시설을 장악했으며 자신들이 세운 평화의회가 국가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독일로 망명했다는 소문도 퍼졌다.

하지만 터키인들은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광장에 모여 쿠데타 세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다음날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 “터키에서 군대가 나를 지배하지 않으며 이끌 수 없다”고 비난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줬다.

이후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던 군인들이 경찰에 항복하고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이 재탈환되며 터키 군본부에 있던 쿠데타 주동자들이 체포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고 결국 쿠데타는 실패했다.

당시 쿠데타는 장기 집권을 하며 이슬람주의를 지향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의 건국아버지인 무스타파 아타투르크는 건국이념으로 세속주의를 천명하고 터키 헌법 제2조에 세속주의를 명시하면서 정교분리와 국교부인 원칙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 보니 인구의 99%가 무슬림인 터키에서는 이슬람이 국교가 아니고 종교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 터키 공항에 전시된 쿠데타 저지 1주년 기념사진

 

이슬람 근본주의와 세속주의 대립

하지만 2003년 총선에서 승리한 후 11년 간 총리로 집권했던 에르도안이 헌법을 대통령제로 개정한 후 2014년 대통령에 취임하며 장기 집권을 하기 시작하고 터키의 건국이념인 세속주의 대신 이슬람을 강화하자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 사상가이며 종교통합주의자인 페트라 귤렌의 세력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이라고 지목했고 지금까지 5만 명 넘게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지난해 7월 15일 쿠데타를 터키인들이 막았다며 이는 민주주의 승리라고 공항 등에 사진을 전시하고 거리 곳곳에 현수막과 포스터를 붙여서 기념했다. 이스탄불에서는 7월 15일과 16일 이틀 동안 이를 기념해 공공 교통수단이 모두 무료였다. 터키 전역에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초생달이 그려진 터키 국기가 도처에서 펄럭이며 터키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터키인들은 지난 쿠데타가 에르도안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루스띰은 “탱크 4대로 무슨 쿠데타를 합니까. 이건 쇼입니다. 정권을 강화하기 자신들이 한 쇼입니다”라고 말했다. 에르도안 정부가 쿠데타가 끝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계엄령을 풀지 않고 계속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있는 것이 예라고 이들은 말한다.

에르도안이 대통령이 된 후 터키에서 실제로 이슬람이 더 강화되고 있다고 사람들은 우려한다. 국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은 공부하다가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아잔)가 나면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하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했던 이슬람 종교교육이 최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하는 것으로 바뀌는 등 정부 차원에서 이슬람을 강화하는 것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탄불을 비롯 터키의 모든 도시에 가면 이슬람 예배당인 모스크를 쉽게 볼 수 있는데 터키 전역에 8만6762개의 모스크가 있다고 한다. 모스크에는 높은 첨탑인 미나레트를 세운  건물이 있는데 한국과 미국의 곳곳에 교회와 십자가가 있는 것처럼 터키에는 뾰족한 미나레트와 돔 형식의 모스크가 곳곳에 있다. 시간만 되면 이 미나레트에 설치된 확성기에서는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라는 안내 방송이 시끄럽게 울려 나오지만 사람들은 자기 일에 바쁘다.

터키는 인구의 80%가 수니파 이슬람을 따른다. 하지만 20%는 이슬람과 무속신앙이 결합된 수피 이슬람을 믿고 있는데 이들은 이슬람의 이단으로 취급 받고 있다.

▲ 터키 마을 곳곳에 펄럭이는 터키 국기

 

터키의 또 다른 민족 쿠르드족

터키 동남부의 작은 도시 아디아만은 터키 내 쿠르드인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쿠르드인들은 터키 동남부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이 접경을 이루는 산악지대인 이른바 ‘쿠르디스탄’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인구는 약 3300만 명으로 독자적인 국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민족 중에서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중동에서는 아랍인, 페르시아인(이란인), 터키인 다음으로 많다. 종교는 대부분 이슬람 수니파에 속하고 언어는 쿠르드어를 독자 언어로 사용한다.

성경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3명의 동방 박사가 쿠르드인 것으로 알려졌다. 쿠르드인들은 한국과도 인연이 많은데 한국전쟁 당시 파병된 터키군의 60% 이상이 쿠르드인이었다.

쿠르드인의 거주지인 쿠르디스탄은 오스만 제국에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전한 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의적인 국경선에 의해 분리되어 쿠르드 전체 인구의 45%는 터키에, 24%는 이란에, 18%는 이라크에, 6%는 시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이라크 쿠르드인들과 시리아 쿠르드인들은 이슬람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와 지상전을 펼친 유일한 민족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주의적 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있지만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 4개국 모두 이러한 요구를 탄압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오랫동안 쿠르드어 방송과 교육을 금지해왔고 쿠르드인 독립 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건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양측 간의 유혈 충돌이 발생해왔다. 하지만 이라크 내 쿠르드인들은 오는 9월 이라크로부터 분리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할 예정이라 파급효과를 두고 터키, 이란 등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 터키 엘리즈라는 도시에 있는 모스크

 

쿠르드 분리 독립에는 찬반 엇갈려

이런 배경 지식을 갖고 만난 쿠르드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다.
우리 일행은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한 미장원을 방문했다. 미장원 주인은 곧 차를 내오더니 조금 있다가 밥먹고 가라며 밥을 내왔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다.

호텔에 다른 일행이 있어 가야 한다며 거절한 후 호텔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안내해달라고 하니까 버스 정류장까지 와서는 버스표를 끊어주고는 같이 버스를 타고 호텔까지 와 우리가 호텔에 들어가는 것을 본 후 돌아갔다. 쿠르드인들은 방문하는 쿠르드인 도시마다 지나가는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하며 같이 사진 찍자고 하고 한국인이라니까 한국 드라마를 얘기하며 좋아했다.

쿠르드인들이라고 다 터키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쿠르드인들은 터키에 속해 잘 살아보자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많은 쿠르드인들은 이스탄불 등 대도시로 이주해와서 직업을 구하며 적극적으로 터키의 일부가 되고 있다.

하지만 터키 동쪽으로 갈수록, 쿠르드인들만 살고 있는 지역일수록 터키에 대한 반감과 독립에 대한 열망이 컸다. 터키 동부의 반이라는 도시에는 인구의 90%가 쿠르드인들이다. 이들 가운데는 아버지가 쿠르드 독립운동을 펼치다 터키 정부에 붙잡혀 감옥에 갇힌 가족을 만났다. 아버지 대신 첫 아들이 가장 노릇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다른 한 가족은 아들을 셋 두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15살인 막내아들이 변호사가 되길 바라고 있다. 변호사가 되어 터키로부터 쿠르드인들을 정당하게 보호하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그 어머니는 이곳은 쿠르디스탄이라며 쿠르드의 독립을 열망했다.

과거 쿠르디스탄의 수도인 디아르바크르라는 도시에서는 쿠르드 독립을 위한 무장세력과 이를 진압하는 터키 군인들과의 충돌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터키는 터키공화국 설립 100주년인 2023년까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지금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쿠데타 후 국내 정세의 불안, 이슬람 강화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 기회만 되면 터키로부터 독립하려는 쿠르드인들이라는 도전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이상민 미래한국 기자 proactive09@gmail.com

<저작권자 © 미래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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