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코 베이는’ 국제거래 분쟁, 전문인력 확보 발등의 불
‘눈뜨고 코 베이는’ 국제거래 분쟁, 전문인력 확보 발등의 불
  • 김민정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7.07.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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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교역 분쟁도 대형화, 다양화되고 있다.
전문화된 법조인력과 법체계가 필요하다

2015년, 아랍에미리트(UAE) 부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일명 ‘만수르’라고 불리는 세계 최고의 중동 갑부의 회사 하노칼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2000억 원대의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제기해 한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하노칼은 2010년 현대오일뱅크 주식을 매각할 때 대금의 10%인 1838억 원을 원천징수로 납부했다. 현행법상 비거주자 외국법인은 주식 양도시 매매대금의 10%나 양도차익의 20% 중 액수가 적은 쪽을 택해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하노칼 측은 당시 국세청이 한·네덜란드 조세조약을 적용하지 않고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해 과세했기 때문에 한·네덜란드 투자보호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ISD를 제기했던 것.

정부에 즉각 비상이 걸렸다. 한·EU, 한·미 FTA가 발효된 상황에서 투자자-국가 간 소송인 ISD에서 패하면 유사한 소송이 봇물같이 터질 수도 있었다. 이에 정부는 우리 측 중재인으로 런던국제중재법원 원장으로 재직 중인 윌리엄 파크 미 보스턴 법대 교수를 선정하고, 정부 대리 로펌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중재팀을 선정해 소송에 대응했다. 윌리엄 파크 교수와 김앤장 측은 하노칼이 자신과 특수 관계에 있는 유리한 중재인을 선임하려 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이를 무산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전문화, 대형화되는 국제거래 분쟁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자 하노칼 측에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의 증거 문서들을 제시하고 중재 심리일을 최대한 압박해 나갔다.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중재인을 선택해서 한국 측 변호인단의 기를 꺾으려던 하노칼 측은 오히려 소송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 끝에 지난 해 6월,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ISD 소송을 취하했다. 김앤장 국제중재팀의 완벽한 승리였다.

김앤장 국제중재팀은 ISD 소송 외에도 민간 국제 상사분쟁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왔다. 2015년 말 국내 한 대형 조선소는 외국 발주처와 우호적 관계를 믿고 발주처의 구두 설계 변경 요구 등을 들어줬다가 유가 하락으로 자금이 부족하게 된 발주처가 “서면으로 요청하지 않은 설계 변경은 국내 조선사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6000억 원에 달하는 계약 취소 및 그에 따른 선수금 반환 등을 요구받았다. 런던에서 진행된 중재에서 조선사는 “발주처의 잦은 설계 변경 요구로 공정이 지연됐다”고 주장했지만 구두로 이뤄진 설계 변경 요구를 입증할 수 없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국내 조선소의 중재 변호를 맡은 김앤장은 발주처 측 잘못으로 공정이 지연된 사정을 입증하기 위해 영업, 계약, 계획, 설계, 구매, 생산, 시운전, 품질관리에 관여한 수십 명의 직원들을 조사했다.

특히 대형 조선사의 내부 업무는 공문과 이메일보다는 내부 시스템의 절차와 도면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 착안해 기계공학을 전공한 변리사들과 함께 조선사 시스템 자료, 기본설계부터 상세설계, 생산설계에 이르는 2D 도면들과 3D 모델링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 발주처의 무리한 발주 및 공사 변경 내용과 공정방해 요인들을 확인해 유리한 조건으로 화해를 이끌어 냈다. 당시 김앤장은 대학 도서관 장서 분량에 맞먹는 자료들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로펌들의 국제 상사 분쟁 중재에서 북유럽 첫 승소 사례는 법무법인 광장이 해냈다.

법무법인 광장은 2016년 국내 C건설업체가 러시아 공기업으로부터 인도에 있는 동력발전소를 수주했다가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당하면서 발생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었다. 상대편은 오히려 C업체가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이행보증금 지급을 역으로 청구했다.

광장 국제중재팀은 스웨덴에 있는 스톡홀름상업회의소(SCC)를 중재 사건의 격전지로 택했다. SCC 중재판정부에 잠정처분을 신속히 요청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 법원에 이행보증금 지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결국 광장은 승소하면서 약 900만 달러를 손해배상으로 받아냈다. 이 소송은 국제중재 사건에서 전문적인 초기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오늘날 국제거래를 하는 대부분의 기업은 분쟁을 국제중재를 통해 해결하므로 국제거래를 하는 기업이 국제중재 시스템을 모를 경우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최근 추세는 국제거래에서 소송보다 중재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러면 왜 기업들은 국제거래에서 중재를 활용할까?

국제중재 전문 인력 턱없이 부족

최근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상임 부원장에 재선임된 로펌 김앤장의 박은영 변호사는 ‘중립적 재판지’의 중요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과 브라질 기업이 합작계약을 했다가 분쟁이 생길 경우 자국 법정에서 재판하면 거래 상대방은 불리한 법정이라고 거부할 것이다.

따라서 중립적 재판지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 뉴욕에서 재판을 하면 1~3심의 재판과 막대한 재판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중재는 단심으로 종결되고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또 재판은 민감한 기업정보와 비밀이 공개될 우려가 있으나 중재에서는 비밀이 보장된다는 점도 기업들이 소송보다는 중재를 선호하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국제중재는 최근 급속히 활성화 되었고,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경영을 위해 중재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국제 상사 분쟁은 정관이 아닌 당사자 간 계약서가 국제중재기구와 중재판정부 관할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당사자들은 합의하에 관할 국제중재기구를 결정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사립국제중재기관으로 가고자 하는 흐름이 형성됐다. 문제는 한국에 영어로 재판에 임할 수 있는 변호사들이 많지 않다는 점과 국제 상사분쟁에서 적용되는 법률이 우리 법체계가 수용하는 대륙법과는 달리 주로 영미법 계열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까닭에 국제적인 기업 인수합병이나 국제 상사분쟁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적인 법조인 양성이 시급한 문제로 지적된다.

 

중소기업, 對중국 무역 사기 조심해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역 규모는 올해 연간 수출 5450억 달러, 수입은 4630억 달러, 총 1조80억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예측되어 3년 만에 ‘무역 1조 달러’를 회복할 것으로 관측됐다.

지난해 대비 수출은 10.0%, 수입은 14.0%가 늘어난 수치다. 수출과 수입이 모두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게 되는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이는 국제 유가하락과 미국의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가 한 몫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 무역도 수출 순위 세계 6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늘어나는 교역 규모에 따라 무역 분쟁의 규모도 커지기 마련이다. 지난 5년 동안 삼성과 애플은 전 세계 9개국에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시장을 놓고 특허와 관련된 소송을 진행했다. 최근 EU는 구글에 대해 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과징금 24억2000만 유로(약 3조1682억 원)를 부과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세계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글로벌 기업들 간의 분쟁 규모도 커지고 있다. 신희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기업의 해외 거래가 늘어나면 국제중재도 필연적으로 많아지게 된다”며 “중소기업은 대응력이 낮은 곳이 많은데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기업들과는 달리 중소기업들의 경우 주로 중국이나 캄보디아, 베트남과 같은 국가의 기업들과 무역에서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 실물경기 둔화로 중국 경제에 경고등이 들어오면서 수입 수요가 줄고 일부 무역업체는 기존 거래에 대해 대금지급을 회피하거나 소액거래(중국의 대한국 수출)에 대해 선불을 요구하고 물건을 보내지 않는 사례가 발생해 결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무역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중소기업의 경우 거래 선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선불지급액의 최소화가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지적한다.

특허 피소자에서 소송자로 변신 중인 중국, 유비무환만이 답

그러나 중국과 무역 마찰에서 중요한 점은 중국이 특허 분쟁에 적극 대응에 나서면서 이제까지 피소국에서 제소국으로 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지난 해 국제특허조약(Patent Cooperation Treaty, PCT)에 신청한 특허 출원량은 4만3100건. 세계 3위에 랭킹됐다. 전년보다 44.7% 증가한 수치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특허 출원량은 23만3000건. 이중 중국은 약 19%를 차지했던 것. 누계기준으로 중국 PCT 출원량은 110만3000건이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3번째로 100만 건을 초과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1만5560건으로 5위에 머물렀다. 2015년과 비교해 6.8% 증가했지만 중국과 비교할 처지가 아니다. WIPO는 현재 출원 추이를 감안하면 2년 후 중국의 PCT 출원 신청량이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중국의 지적재산권 등록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면서 국내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른바 중국의 ‘특허 굴기’에 대비해 지적재산권 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정향 코트라 중국 선전무역관은 “휴대폰 부문에서 중국 기업의 글로벌 시장 및 자국시장 내 특허 출원이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중국 내 특허분쟁에서는 중국 기업에 유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적극적인 특허 출원을 통한 지재권 분쟁에 사전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화웨이는 중국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으며, 중국 법원은 화웨이의 손을 들어줬다. 2017년 4월 6일 중국 법원은 “삼성전자가 화웨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8050만 위안(13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화웨이에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은 물론 22종의 갤럭시 스마트폰 판매가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삼성전자도 올해 2017년 7월 화웨이와 모바일 기기 유통업체 헝퉁다(亨通達)를 상대로 1억6100만 위안(약 275억 원) 규모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해 ‘맞불’을 놨다. 본격적으로 한·중 간에 특허를 둘러싼 분쟁이 시작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삼성.화웨이 분쟁과 같은 IT 분야 외에도 한·중 기업간의 특허 분쟁은 점증할 조짐이다.

2013년 대우조선해양은 중국의 한 선박회사로부터 제기된 천연가스연료 추진 선박 관련 특허를 사생결단으로 소송 분쟁을 진행했던 사건도 있었다. 이 기술은 최근 선박 환경 규제 강화에 따라 부상하고 있는 친환경 선박의 핵심기술이다. 대우조선은 세계 최대 선박 엔진 회사인 만디젤 사가 개발한 고압가스 분사식 엔진(ME-GI 엔진)에 적용되는 천연가스 연료공급시스템을 4년여 간의 연구 끝에 2011년 완성했다.

2014년 12월 프랑스에서도 특허성의 유효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소송을 제기한 중국 기자재 업체는 그간 “대우조선해양이 등록한 특허는 진보성과 특허성이 없다”며 등록 무효화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중국 특허청에서 대우조선 기술의 특허성을 인정함에 따라 관련 기술을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은 자신의 기술 특허를 미리 유럽과 기타 제3국에 출원 등록해 놓은 전략이 유효했다. 이러한 점은 향우 국제 교역 분쟁에서 특허의 경우 변리사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함을 말해준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작은 경제 국가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글로벌 경제질서에서 우리 기업들과 정부는 과거와 다른 무한 경쟁과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리스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업들 간에, 그리고 기업과 정부 간에 소송과 분쟁을 불러오게 된다. 유비무환만이 답일 것이며 그러한 준비도 국내법과 전문 인력, 그리고 무엇보다 국제법에 정통한 인력들을 키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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