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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좌파, 그들은 누구인가

기사승인 2017.07.17  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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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속기획] 한국좌파의 철학적 토대와 전략 上

이른바 ‘좌파의 세상’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좌파는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사회를 보다 도덕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진보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좌파는 이념적으로 갇혀 있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오늘을 확보했던가. 미래한국이 상하 연속기획으로 묻고 답한다. <편집자 주>

▲ 그람시는 사회주의 계급혁명은 하나의 사건, 혹은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변해가는 하나의 유기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사람들의 의식개혁은 사회구조 개혁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좌파에게 영향을 준 대표적인 좌파 사상가로는 그람시와 알튀세르(알튀제)를 들 수 있다. 여기에 남북관계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주체사상이 깊이 개입되어, 한국 좌파들의 사상적 기저에는 ‘그람시 이론 + 알튀세르 이론 + 주체사상’ 등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조절주의 등의 고급이론들이 나타난 반면, 한국 좌파들은 주체사상의 영향으로 매우 교조적인 좌파의 행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론적인 경향으로 보면 그람시의 이론은 주로 혁명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좌파 모두가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다만 알튀세르의 고급이론은 좌파의 고급 지식인들이 선호해 교조적이고 무식한 주사파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따라서 좌파 고급 지식인들은 알튀세르나 ‘조절주의 이론’ 등을 토대로 체제를 비판하고, 민자통(민주, 자주, 통일) 운동을 강조하는 주사파는 보다 직접적으로 감성적으로 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것이 한국 좌파의 현주소다.

그러나 민자통 운동세력이 사실상 전체 좌파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우파가 좌파 고급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이유는 우파 지식인들이 이 개념 자체를 이해할 정도로 성숙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 좌파 고급 지식인들은 적화통일이 되면 ‘反공화국 종파 반동세력’으로 가장 극렬하게 숙청 대상이 되겠지만,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면 현실적 좌파운동에서는 항상 연합하여 결국은 주사파 운동에 협력하고 있다.

한국 좌파의 가장 큰 불행은 종북 주사파(NL)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좌파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트로츠키, 그람시, 알튀세르, 북한의 주체사상 등을 신봉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대부분의 사상들이 ‘잡사상’이라 하여 사라지고 주체사상이 주류를 형성했다.

북한이 60년 이상 강력한 대남혁명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한국의 좌파들은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주사파를 반대하는 대부분의 세력들은 좌파에서 소외된 까닭이다.

따라서 한국의 좌파 진영은 현재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보다 다차원적이고 시대정신에 부합한 ‘진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올드좌파 프레임’에 갇힌 ‘친북세력’ 또는 ‘종북 단체’ 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앞으로 모든 언론들은 이 ‘진보’라는 말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부분에 대한 정리를 하지 않고 현재의 한국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한국 좌파에게 영향을 준 대표적인 좌파 사상가로는 그람시와 함께 알튀세르를 들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인 알튀세르는 마르크스 사상에 구조주의적 해석을 제시해서 사멸 직전의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시킨 현대 공산주의자로 평가된다. 1980년대 한국에서 유행했던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은 그의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강조한 그람시,루카치 등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고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좌파가 가진 내면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람시와 알튀세르의 이론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그람시의 ‘진지론’과 헤게모니 투쟁에서 패배한 우파

태생적 불행과 고난의 대명사 그람시는 혁명적 변혁의 창출에 있어서 ‘의식(意識)’의 역할을 주장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이다. 그람시는 서유럽의 자본주의가 매우 견고하다고 인식했는데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각종 여론기관을 통하여 지배층(부르주아)들의 힘과 동의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유지되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부르주아가 이 같은 문화적인 ‘헤게모니(hegemony)’와 연대(連帶)를 유지하는 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그람시는 봤다.

마르크스나 레닌도 마찬가지지만, 그람시를 포함한 이들 좌파 이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체제 전복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고 이른바 혁명의 성공 후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이 적화된 후, 이들의 사고는 남북 좌파의 사회주의적 정의 실현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대한민국의 발달된 자본주의적 프레임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해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지금도 이른바 좌파 일부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보면 사회주의 혁명은 성립이 불가능하다. 이 점은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한 부분이지만, 다시 간략히 요약해 본다.

무엇보다 먼저 현대의 국제시장으로부터 유리된 사회주의가 성립하려고 하면 다른 사회주의 국가가 서로 협조해 일종의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 경제는 경제적 잉여(economic surplus)에 의한 구상무역제(求償貿易制)를 바탕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주변 사회주의 국가의 상부상조가 없으면 경제체제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북한이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에 이내 ‘고난의 행군’의 늪에 빠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한국에 사회주의 혁명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 경제는 얼마 가지 않아서 ‘바나나 공화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또 사회주의 혁명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자본이 광범위하게 이탈하고 많은 주요 인적 자원 또한 해외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경제가 붕괴 상황까지 가게 된다. 더구나 마르크스주의가 제대로 성립하려면 노동의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세계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대립은 자본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측면이 있다. 어느 국가든지 해외직접투자(FDI)를 유치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데 그것은 자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람시는 마르크스 레닌이즘의 맹목적인 추종보다는 보다 현실에 맞는 전략과 이론의 개발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의 다양한 변혁의 시도들도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그는 경제를 포함하면서 정치, 문화, 사회적 관계, 이데올로기 등을 연결 짓는 ‘관계의 앙상블(ensemble)’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는 정부를 전복시키기에는 레닌주의적 혁명 전위대보다는 일상적 사회현실과 연결된 ‘대중정당’이 더 적합하다고 역설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1980년대 이후 각종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좌파 진지들이 구축되었지만 민노총, 민변, 참여연대 등이 전체 사회운동을 주도할 때까지는 세력이 미약했다. 2000년 들어서 PD 중심의 민노당이 창당되자, 급진 주사파(이하 NL)는 군자산(충북 괴산)에 모여 ‘정치판에 뛰어들 것’을 결의(2001)했다.

이 때의 문건이 <군자산의 약속(맹약)>인데, 대중 정당을 통해 정권을 잡고,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후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룬다는 계획이 정리되어 있다. NL은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을 지지했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조국통일의 대사변기(6·15 남북정상회담)를 맞았다”하여 강력한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계급혁명은 하나의 사건 혹은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변해가는 하나의 유기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사람들의 의식개혁은 사회의 구조개혁과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람시는 물리적 혁명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중시해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점은 알튀세르의 견해와 용어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베트남 공산당은 정치전으로 몰아서 군사전의 약세를 역전시켰다. 이것은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성공적으로 장악한 사례다.

현재 한국 우파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지속적으로 상실하고 있다. 이에 대한 세련된 대응 논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그 동안 보수 정부나 우파가 주장하는 논리나 정책은 오히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안보적으로 정말 심각한 위기 상황인데도 국민들은 반응도 하지 않는다. 실제로 국가안보가 풍전등화의 상황인데도 바른정당의 일부 의원조차도 ‘종북몰이’를 한다고 자해(自害) 공격을 하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다.

좌파의 진지를 파괴하는 것이 핵심

그람시는 교육, 언론, 법, 대중문화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있어서 국가기구에 의한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시민사회 내에서 획득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서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뤄진다고 봤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적 헤게모니를 국가로부터 탈취해 와야 하고 이를 위해 교육, 언론, 학계, 예술,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진지(陣地)를 구축하여 대항 이데올로기를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유명한 ‘진지론(陣地論, war of position)’이다.

현재 한국의 좌파 진지들은 수백 개 이상으로 매우 견고하게 구축됐다. 현재로서는 우파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기점으로 수많은 좌파 진지들이 구축되었는데 이는 좌파 정권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북한의 대남 전술적·전략적 성공이기도 하다.

그 동안 좌파 정권은 여러 형태로 진지 유지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한 반면, 우파 진지는 오히려 경제적 토대를 지속적으로 상실하고 급기야 바른정당에서는 전경련 해체라는 자해(自害) 논리로 무장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 진지들을 어떤 방식으로 인지하고 파괴하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진지 자체를 와해시킬 수 있도록 이데올로기적으로 무장해 공격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좌파 정권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 자체적인 실정(失政)에 따라 이데올로기적 또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와해시키는 방법 등이 있다.

예를 들면 사드 문제에 있어서도 결국 미·중 간의 외교적 실패가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이외에도 대책 없는 원전 포기, 비현실적이고 오히려 자연파괴적인 신재생에너지 문제, 가뭄과 홍수에 무대책인 채 악의에 찬 4대강 사업 왜곡 문제, 비정규직 문제, 합리적 이성을 상실한 개성공단 재개 문제, 독일과 달리 좌파 정권에 비협조적이며 귀족화된 민노총과 좌파 정부의 갈등 등이 지속적으로 좌파 정권의 발목을 잡을 것이니, 이 때를 놓치지 말고 적극 공략해야 한다.

그람시는 전략론으로 ‘기동전(機動戰, war of movement)’과 ‘진지전’ 개념을 사용했다. ‘기동전’이란 1917년 러시아와 같이 피아(彼我)로 구분하는 두 개의 세력이 정면 대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좌파는 ‘기동전’은 적합하지 않고 이보다는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진지전’이 적합하고 ‘기동전’은 ‘진지전’의 일부여야 한다고 봤다. 그람시는 진지전이야말로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유일한 교전 방식이며 기동전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에 한해서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의 경우, 기동전은 두 가지의 경우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외부적으로 북한이 주체로 북한은 미군 철수 이후에는 언제든지 기동전이 가능한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적으로 군부 내에 침투해 혁명의 만조기(그람시의 표현으로는 ‘유기적 위기’)에 물리력을 동원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현재 좌파 정권이 다소 온건하고 실용적이라는 전제 하에서 보면, 굳이 내부적인 기동전을 구사할 이유는 없다. 다만 온건 좌파 정부 또는 우파 세력들이 ‘급진 주사파 또는 종북세력의 준동을 어떤 방식으로 물리적으로 통제하는가’가 관건이다.

‘기동전’의 성공 여부에 관해, 그람시는 ‘유기적 위기(organic crisis)’ 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유기적 위기’란 기존의 지배계급이 장기간 치유가 어려운 구조적 모순에 직면해 있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때는 기동전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 유기적 위기의 대표적인 경우가 광우병 사태, 한미 FTA 반대, 효순·미선 사건, 세월호 사건 등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효순·미선 양이 훈련 중인 미군 전차에 사망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진지에 대기하고 있던 좌파 세력들은 총공세를 단행하여 전국적으로 수백 회의 촛불시위를 하여 전국을 마비시켰던 것을 들 수 있다. 급기야 미국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2번이나 공개 사과를 했으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 사건들은 하나같이 거짓 정보의 확산 등으로 과격한 정치전으로 귀결됐다. 또 다른 예는 2015년 민노총 한상균의 주도로 벌어진 ‘민중총궐기’인데, 이 때의 시위는 7만 명 규모로 경찰 기동대와 충돌로 115명의 기동대원이 부상하고, 기동대의 대형 차량도 습격해 50대가 파손되는 등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53개의 좌파 단체가 참여했지만, 주력은 민노총과 전교조였다. 여기에는 범민련(조국 통일 범민족 연합)의 남측 본부도 가세하였다.

범민련의 전략 목표는 한일 간의 관계를 이간하고 한미일 안보·경제 협력 관계를 파괴해 미일 제국주의의 축출을 통한 한국내의 친북 정권을 수립해 북한 주도로 통일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축인 전교조는 결성 당시(1989)에는 비합법이었지만, 김대중 정부가 일단 합법화했고 다시 불법(2013)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전교조는 현재까지도 교육 내용이나 인사·예산 학교의 설립·폐지 등 결정에 절대적인 권력을 불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위험한 세력이다.

<통일뉴스> 보도(2016.9.20)에 따르면 2017년 박근혜 하야 투쟁을 이끌었던 ‘2016년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2016년 민중총궐기 12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12대 요구안에서 ‘민주주의’ 부문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정원 해체가 포함되어 있고, ‘자주평화’ 부문에서는 대북적대정책 폐기, 5·24조치 해체, 한반도 사드(THAAD) 배치 반대, 한미일삼각군사동맹 중단 등이 세부 사항으로 나열되어 있다.

국가보안법 철폐와 국정원 해체는 북한이 제시하는 ‘민주’의 강령적 과제에 포함된 것들이고 대북적대정책 폐기와 5·24조치 해제 등은 북한이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하는 단골 메뉴다.

남북 관계가 파탄에 이른 것은 금강산 관광객 사살, 3차 서해교전, 핵실험,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북한의 대남적대노선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 관계를 무시하고 무작정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다. 총궐기투쟁본부에는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단체도 포함되어 있는데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가 이에 해당한다.

북한은 항시 기동전이 준비된 국가이고, 그리고 북한은 한국에 대한 정치적 개입은 당연한 의무이자 역사적 사명으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이제 그람시에 더해서,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사생활로 유명한 알튀세르는 한국 좌파에 어떤 그림을 그렸던가.

마르크스는 다소 ‘경제결정론’적 시각으로 국가는 자본에 의해 종속되어 자본가 계급이 만들어 낸 제도적 지배기구라고 봤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폭력혁명을 통해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자본주의 국가나 정치가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는 점에 주목했다.

알튀세르의 국가관과 호명이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을 심화시켜 60년대 후반 ‘이데올로기적 억압기구로서의 국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즉 국가를 ‘억압적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구분하고 이 가운데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계급투쟁의 장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억압적 국가기구’는 지배 질서에 저항하는 세력이나 사상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으로 정부, 군대, 경찰, 법원, 감옥 등이 여기에 해당하고 이것들은 물리력 즉, 폭력을 통해 기능한다.

다음으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국민들의 사고 방식이나 신념, 가치관, 더 나아가서 감성의 차원까지도 지배함으로써 지배적 사회 관계를 유지해 가는 기제이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에 있어서 보다 효과적인 재생산 기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부분은 그람시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세련된 프랑스 버전처럼 들리기도 한다.

알튀세르는 국가는 반드시 자본주의적인 생산수단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요소가 있고, 자본주의적인 국가가 유지되는 방식에 있어서 ‘자본’이 아닌 상부구조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이론화 한 것이다. 즉 상부구조가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자동적으로 전환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알튀세르는 ‘호명(呼名)이론’을 제시했다. 호명이론은 ‘객체의 주체화 이론’으로 자본에 대한 국가연구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호명이론을 쉽게 이해해 보자.

가령 최고의 아이돌 스타가 자동차 TV 광고에 나와서 눈웃음을 치며 “이 차는 바로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속삭인다면 피지배계층은 이 사회의 주체도 아니고 별로 중요한 존재도 아니지만 그 ‘당신’이라는 말로 인해 “내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일까?”하는 식으로 가치를 스스로 주체적으로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객체에 불과한 존재가 마치 주체처럼 인식하면서 이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문화 이데올로기’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피지배계층이 스스로 자신을 사회의 ‘주체’라 인식함으로써 지배-피지배 계층은 유지되며 국가는 계속 자본주의 상태로 존속할 수 있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비자본계급으로 자본주의사회의 객체나 대상에 불과한 피지배계급들이 스스로 주체라고 믿는 것은 이 같은 ‘이데올로기의 효과’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호명이론은 ‘문화 이데올로기론’의 시발점이 된다.

알튀세르의 이론들과 객체의 주체화로의 왜곡이 자본주의의 본질 중의 하나라는 주장이 유럽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줌에 따라서 북한의 이른바 주체사상도 관심을 받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김운회 동양대 교수 webmaster@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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