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삼성은 위기를 돌파할 것인가  
[심층분석] 삼성은 위기를 돌파할 것인가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1.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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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지배를 받던 핀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 제지공장 하나가 들어섰다. 종이를 만들던 그 회사는 고무제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어 전선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무전기와 같은 통신장비를 만드는 회사와 합작을 했다. 이 회사는 1998년 미국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1위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등극했다. 바로 노키아다. 

이후 노키아는 2007년 말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를 육박하는 점유율을 기록했고, 핀란드 수출물량의 20%,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약 25%에 해당될 정도로 엄청난 공룡기업으로 성장했지만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당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노키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노키아는 고무 사업을 했던 덕에 북유럽에서는 지금도 가끔 노키아가 만든 타이어(Nokian 브랜드)를 달고 다니는 자동차를 볼 수 있다. 또 핀란드에서 노키아제 고무장화는 특히 인기가 높다. 노키아의 몰락은 급변하는 기술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 이유가 가장 컸지만 최근에는 노키아가 위험을 회피하고 현실에 안주하려 했던 임직원들의 보수적인 조직 문화가 새롭게 지적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흔히 한국의 노키아에 비유되곤 한다. 우리나라 GDP 대비 삼성전자 부가가치 비중은 약 5.7%다. 연결기준이 아닌 삼성전자 단일 기업의 부가가치는 64조 원으로 우리나라 GDP 대비 비중 3.2% 수준이다. 물론 한 기업의 부가가치가 우리나라 GDP의 5.7%를 차지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삼성그룹 차원으로 넓히면 그 규모는 더 경이적이다. 

삼성그룹 주요 15개사의 매출이 올해 사상 처음 400조 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원자재·공급망 등 각종 위기와 변수 속에서도 삼성그룹 매출은 여전히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0% 수준으로, 막대한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해 삼성그룹의 법인세 규모는 모두 17조1365억 원으로 집계됐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연간 법인세수는 70조3963억 원으로, 삼성그룹의 법인세 비중은 24.3%에 달했다. 15개사의 임직원 수는 20만802명(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0년 기준)으로, 20만 명이 넘었다. 우리나라 장교·부사관 등 직업군인 수(20만명)와 서울시 용산구 인구(22만 명)에 맞먹는 수준이다. 이 중 삼성전자가 11만3485명으로, 가장 큰 비중(56.5%)을 차지했다. 이외에 삼성SDS가 1만2019명, 삼성전기가 1만1866명, 삼성SDI가 1만1315명으로 1만 명을 넘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글로벌 R&D 투자 상위 2500개 기업의 국가별 현황(2021년 12월 기준)을 분석한 결과 한국 기업의 R&D 투자 중 삼성전자의 비중은 절반에 가까운 49.1%를 차지했다. 이 수치는 개별 국가의 1위 기업 투자 집중도, 미국(6.3%), 중국(10.0%), 독일(17.1%), 일본(7.6%), 영국(21.7%), 프랑스(19.8%) 등 주요국에 비하면 크게 높은 수치다. 

이러한 삼성에 최근 위기론이 회자되고 있다. 원인은 삼성의 반도체 기술이 글로벌 경쟁사들과 초격차를 벌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삼성의 얼굴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 부문에서 최근 아이폰에 밀리는 현상이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자되는 삼성전자 위기론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애플은 올해 1분기 아이폰에서만 70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매출의 2배 이상이며, 반도체, 가전, 모바일을 모두 합한 전체 실적보다도 많다. 중저가 라인업에 치중된 삼성과 달리 고가 프리미엄 제품 위주의 판매구조 덕이다. ‘판매량 1등 삼성’이라는 타이틀도 버티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출하량에서도 조만간 삼성을 추월해 매출 격차를 더 벌릴 것으로 본다. 

반도체 부문도 심각하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세계 1위 대만 TSMC가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더 벌렸다. 7나노(㎚·1㎚=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판매량이 늘면서 TSMC의 실적이 큰 폭 불었다. 삼성전자도 퀄컴의 시스템온칩(SoC)·모뎀 등을 위탁 생산하면서 매출이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 삼성전자 파운드리 매출은 전분기보다 14.1% 증가한 36억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시장점유율은 1분기 11.7%에서 2분기 12.4%로 0.7%포인트 상승했다. 1위 기업인 TSMC의 올해 3분기 매출은 172억4900만 달러로 2분기에 비해 10.2% 늘었다. 시장점유율도 2분기 56.4%에서 3분기 57.9%로 올랐다. TSMC와 삼성전자 점유율 격차는 2분기 44.7%포인트에서 3분기 45.5%포인트로 커졌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 이건희 회장 시절 삼성전자가 D램 반도체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했던 신화를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는 바로 파운드리 사업으로 이어갈 생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TSMC와 경쟁을 염두에 두고 2042년까지 경기도 용인에 300조 원 이상을 투자하는 종합반도체 전략을 계획 중이다. 글로벌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해 삼성 파운드리 사업의 중심 허브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아울러 올해 완공 예정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도 내년 하반기부터 4나노 공정을 활용한 파운드리 제품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에 투입된 실질적인 투자금액은 22조 원이 넘는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이재용 회장에 대한 사법적 문제가 하루 속히 정리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그래야 ‘뉴 삼성’의 비전 실행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삼성에 위기를 부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바로 삼성의 조직 문화 때문이다. 

2018년 4월 6일 삼성증권이 직원 보유 우리사주에 대한 배당 과정에서 배당금 대신 배당금에 해당하는 단위의 주식을 주면서 대규모 유령주식 발행 사건이 터졌다. 무려 112조 원이라는 희대의 위조주식이 발행되어 직원의 통장으로 유통이 되었고 그 중 약 2000억 원은 직원에 의해 매도되어 누군가가 매수를 하는 허술한 증권시스템이 노출됨으로써 세계경제포럼의 “우간다보다 못한 금융 성숙도”라는 평가가 제대로 된 것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사태로 공매도, 나아가 한국 주식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다. 

이 사건은 삼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3월 31일 자본시장법 위반과 컴퓨터 등 사용 사기, 배임 혐의를 받은 구모 씨(41)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돼 2심까지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선고받은 가담자 7명의 처벌도 그대로 유지했다.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발행사건은 단순한 직원 실수라고 보기에는 전반적인 조직경영에 어딘가 심대한 하자가 있다는 진단을 불러왔다. 흔히 ‘관리의 삼성’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삼성그룹의 인사와 조직 관리는 탁월하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업계와 경영 전문가들은 이 사건에서 삼성의 조직문화가 실리 추구보다는 ‘형식주의’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무게를 실었다. 문서로 작성되고 보고되면 그것으로 끝나며 실제 상황이 어떤지, 이를 점검하는 태도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이 위험보다는 안전을 선호한다는 평가와 맞물려 있다. 삼성증권이 증권업계에서 수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로 지목되는 부분이다. 

특히 이보다 2년 앞선 2016년 삼성 갤럭시 노트7 리콜 사태는 삼성전자의 명예를 크게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그해 8월 출시한 삼성전자의 패블릿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 7(모델명 SM-N930)이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로 전량 리콜된 후 리콜된 교환 제품도 재발화로 2차 리콜되며 최단 수명 기종으로 단종 되기까지 일련의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물론 이 위기는 잘 극복되었지만 이어 2년 후 삼성증권에서 터진 112조 유령주식 발행 사건은 삼성그룹 전체의 조직과 인사에 어딘가 노키아의 그림자가 보이는 데자뷰마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삼성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등으로 삼성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시기로 진입하게 된다. 

실행을 중시했던 삼성

삼성그룹의 특성 중 하나는 실행 중심의 기업문화이다.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여 단 6개월 만에 마친 사례는 이러한 기업문화를 잘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하면 된다는 정신과 규율이 강한 조직이 되었고, 조직에는 항상 긴장감이 흐른다. 또한 효율성 강조는 업적을 중시하는 문화를 낳았다. 

삼성전자는 1969년 창립하였으나 기술 수준은 낮고 전자사업에 대한 경험도 부족하여 명성 있는 전자회사가 되기 위한 조직 정체성은 확립하지 못하였다. 삼성전자는 1970년대 말까지 핵심부품을 대부분 일본의 부품업체에서 조달하였고, 1990년대 초반까지 가전제품은 주문자상표부착상품(OEM)이 주였고 저가 제품에 머물렀다.

그리고 TV의 경우 소형과 중형만 생산이 가능하였고 고가인 대형 TV는 기술 부족으로 생산하지 못했다. 관리지향적, 합리적, 빈틈없이 치밀하며, 강한 책임감 및 추진력 등의 특성은 삼성전자의 초기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특성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초기 정체성은 철저한 관리지향과 함께 전자산업의 기술경쟁력은 낮은 수준의 기업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한 삼성에서는 1983년 반도체사업의 참여 결정을 이병철 창업자의 ‘2·8 동경 구상’이라고 한다. 이병철 창업자는 언론을 통해 내외에 공식적으로 반도체 사업의 참여를 선언했다. 즉 삼성그룹이 1983년 3월 15일에 발표한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 중에 “세계 각국의 장기 불황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저가품 대량 수출에 의한 국력 신장은 한계에 이르렀다. 삼성은 부가가치가 높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첨단 반도체 사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는 내용이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이 되고자 하는 미래의 조직 정체성을 담은 정체성 선언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가전 사업들마저 시장을 넓히지 못하고 정체에 빠져들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의 ‘미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왔다. 1996년 이 회장은 단순히 상품의 겉모습이 아니라 기업의 철학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21세기에는 디자인 경쟁력이 기업 경영의 승부처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에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라고 불렀다. 돌이켜 보면 애플의 디지털 기기 전략의 핵심을 모두 내다 본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이듬해에도 ‘디자인 예찬론’은 계속 됐다. “상품 경쟁력 요소는 기획력과 기술력, 디자인력이다. 과거에는 각 요소가 더해지는 합의 개념이어서 3가지 결정 요소 중 한 가지가 약하더라도 다른 요소의 힘이 강하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곱셈식인 요즘에는 기획력과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디자인이 약하면 경쟁이 불가능하다.”(1997년 신년사) 

삼성전자는 올해 경영 전략으로 모험보다는 안정과 실리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과 같은 공격적이고 혁신적인 비전을 내놓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묻고 싶은 것은 삼성과 이재용 회장이 선대의 그런 기업가정신과 도전 정신, 그리고 국가를 사랑했던 기업보국의 마인드를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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