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살려면 ‘진보 베끼기’라도…
보수가 살려면 ‘진보 베끼기’라도…
  • 김주성 전 교원대 총장
  • 승인 2017.11.1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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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을 되짚어보면 보수 회생의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모두 잃어버렸다. 보수의 정치력이 너무나 취약했기 때문이다. 정체성 상실로 말미암아 갑작스럽게 국민 신뢰를 잃어버리자 당황한 보수가 정치적 감수성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정체성을 회복하고 정치력을 되살려야 할 때다.

정체성의 회복 과제부터 살펴보자. 보수의 가치는 소중하다. 보수는 진보보다 오히려 개혁성이 크다. 현실적인 개혁 방안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진보는 본래 유토피아를 추구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복고적인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크리스토퍼 래시는 말한다. “진보는 반대론자들과 싸웠을 뿐 결코 미래와 싸우지 않았다.”18) 우리의 진보진영도 마찬가지다. 마치 구세력의 대변자인양, 미래지향적인 역사관을 혐오하고 일자리가 줄어들까봐 4차 산업혁명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좌)가 지난 10월 20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21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오른쪽은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 / 연합

진보의 전략-‘보수는 수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은 보수세력에게 수구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 성공했고, 스스로 미래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보수세력이 소통 부재의 권위주의적인 권력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널리 유포된 진보담론에 밀려 보수가치에 대한 국민의 감수성이 허약해졌다.

이제 보수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보수의 개혁성을 되살려야 한다. 개혁적 보수로 다시 태어나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시대에도 보수 리더십은 미래설계를 가지고 국민을 설득했었다. 선진형의 민주시대에 들어와 보수가 개혁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개혁보수의 미래담론을 싹 틔워야 한다. 취임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진보정권은 벌써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권력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전임 정권의 정책을 적폐라면서 한 손에 뒤집고, 소통과 협치를 하겠다면서 문제를 제기하면 “반성부터 하라”고 호통치고 있다.

과거와 싸우고 있을 뿐 미래를 보여주지 못한다. 머지않아 미래설계에 대한 국민의 갈망이 커질 것이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보수의 개혁성을 개척해 미래세력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보수가치를 매력적인 미래가치로 만들어야 한다. 시장주도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담론을 장악해야 한다. 시장주도의 산업혁명은 보수가치가 제도화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의 조건 형성에 대한 정책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공유경제로 개편되는 자유시장의 변화에 대한 정책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청년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창조적인 교육에 대한 정책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북한의 핵 위험이 커질수록 공화주의적인 애국심을 높일 수 있는 공동체교육에 대한 정책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국제공조가 불가피한 만큼 국제교육에 대한 정책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젊은 보수, 깨끗한 보수, 소탈한 보수, 활달한 보수, 멋있는 보수, 훌륭한 보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늙고 고집스런 보수의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 보수담론이 신선해져야 한다. 건국과 부국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에 갇혀버리면 안 된다.

새로운 이슈로 보수담론을 확장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매력을 느끼게 해야 한다. 부패와 웰빙 보수의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보수, 기부와 봉사의 보수로 도덕재무장을 해야 한다. 젊은이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보수의 목소리가 당당해져야 한다.

소통의 보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불통보수의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 귀 기울이는 보수, 쉽게 어울리는 보수가 되어야 한다. 팀플레이를 잘하는 보수, 토론을 잘하는 보수가 되어야 한다.

성실하고 진지한 보수, 대중에게 어필하는 보수가 되어야 한다. 이미지의 시대에 보수는 진보보다 적응 속도가 느렸다. 이미지 시대에 맞도록 보수가치를 새롭게 단장하지 못했다. 보수가치를 새롭게 단장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해야 한다.

보수의 정체성 회복이 우선 과제

보수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잃어버린 정치력을 회복해야 한다. 보수의 정치력은 원래 탁월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최근 아쉬웠던 점들이 부풀어서 무기력해진 것 같다. 보수의 정치력이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살펴보면서 회복 방안을 마련해보자.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 그리고 탄핵정국이 마무리될 때 적어도 두 번의 보수 회생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기회를 못 살리자 보수의 겨울이 찾아왔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3번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은 차가웠다. 정계 원로들의 충고를 듣고 2016년 11월 29일에 마지막으로 대국민 담화를 했다. 그 때가 보수 회생의 첫 번째 기회였던 것 같다. 만일 원로들의 충고대로 4월 퇴임을 발표했다면, 자신도 살고 보수도 살고 정국도 수습되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에 미뤘다. 그러자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문제가 불거졌다. 대통령 탄핵 문제로 여당은 분열되었다. 탈당파 여당의원들이 가담해 2016년 12월 9일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밀려드는 거대한 촛불이 집권세력 전체를 삼켜버릴 듯하자 탈당파는 보수로 살아남고자 탄핵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그러자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태극기집회가 촛불집회 못지않게 커졌다.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활동하던 김평우 변호사의 탄핵반대논리는 보수 일반에게 용기를 줬다.

탄핵판결이 예정된 3월 초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아마 이때가 마지막 기회였다고 보인다. 만일 탄핵심판이 나기 직전에 하야했다면, 자신도 살고 보수세력도 살고 보수 명분도 다시 살아났을 것이다.

보수가 놓친 기회들

박 대통령이 자신의 결백만 믿고 고집을 부리자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 이제 자신뿐만 아니라 보수의 존립 기반마저 무너졌다.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자살은 여러 면에서 의구심을 안겨줬지만, 적어도 ‘폐족’이었던 친노운동권을 되살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촉매 역할을 했다.

자신의 체면도 문제였겠지만 진보 전체를 위해서 살신성인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은 이제 진보의 신이 되었다. 진보세력 전체의 존경을 받고 후계자 대통령까지 나왔다.

19대 총선 때까지만 해도 보수가 정치 무대 전체를 휩쓸까봐 진보들은 안절부절 하였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 보수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박 대통령의 뺄셈정치 때문이었다. 유승민계를 몰아내려하자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직인을 감춘 채 도피했다. 이것이 유명한 옥새파동이다.

희극적인 모습이 연출되자 야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기했을 뿐만 아니라 다수당으로 등극까지 했다. 여당의 공천파동 이전에는 야당은 분열로 치달아 국민 지지도가 땅바닥을 치고 있었다.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뺄셈정치만 안 했어도 여당이 크게 이겼을 것이다.

보수는 뺄셈정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15대 대통령 선거 때는 보수의 뺄셈정치 때문에 DJP연합이 이뤄졌다. 당시 신한국당의 이회창 대표는 원조보수의 정치적인 요구를 물리쳤다.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필 대표가 교섭단체의 구성 요건이 완화되기를 바랐지만 무시해버린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김 대표는 등을 돌리고 말았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지만, 이때부터 보수가 분열로 망하기 시작했다. 진보는 분열에서 연합으로 방향을 틀었다.

16대 대통령 선거 때도 진보의 노무현 후보는 보수의 정몽준 후보와 연합을 추진했다. 이념이 다른데도 연합을 추구하는 진보의 덧셈정치와 비교해보면, 보수들은 벌써 배부른 웰빙정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수는 이제 더 이상 배부른 처지에 있지 않다. 그동안 진보는 독자적으로 집권할 수 없었다. 지난 진보 정권들은 모두 보수와 연합해 집권했었다. 그 뒤 진보의 득표율이 계속 높아졌다. 지난번에는 보수의 득표율과 엇비슷할 정도까지 올랐다가, 이번에는 아예 압도적으로 능가했다.

탄핵정국으로 대선운동장이 기울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생각 밖으로 놀랍다. 진보 3당의 득표율이 69.7%인데 반해서 보수 2당의 득표율은 30.9%에 그친 것이다. 진보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진보의 상승 배경을 눈여겨봐야 한다. 진보는 민중 동원력이 탁월하다. 2002년의 효순·미선 사건, 2004년의 노 대통령 탄핵 반대, 2008년의 광우병 촛불집회, 2013년의 국정원 댓글사건, 2014년의 세월호 침몰사고 그리고 2016년의 박 대통령 탄핵촛불 때의 집회 규모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민주정치의 시대에 접어들어 거의 2·3년 마다 큰 이슈는 물론 작은 이슈조차도 거대한 정치 쟁점으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런 한국 진보의 능력은 아마 세계 최고일 것이다. 탁월한 능력의 배경에는 ‘보수는 친일후예’라든가 ‘보수는 독재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줄곧 내면화하고 유포해온 교사집단과 노동자집단이 있다.

무력해진 보수의 입장에서 정치력을 회복할 수 있는 첩경은 ‘진보 베끼기’이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이 위기에 걸리면 서로 베끼기를 하듯, 한국 보수도 진보방책을 베끼는 것에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진보처럼만 하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보수 전체를 위해서 살신성인해야 하고, 덧셈정치를 해야 하며, 보수가 개혁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내면화하고 조직적으로 유포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처럼 인물을 키워야 한다. 2인자를 두지 않으려는 보수 전통은 과감히 벗어 던져야 한다. 진보가 하는 것처럼 선배 정치인들의 기념사업도 적극적으로 거창하게 해야 한다.

▲ 텍사스주립대 정치학 박사 / 전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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