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미중 빅딜론, 무엇을 경계해야 하나?
키신저의 미중 빅딜론, 무엇을 경계해야 하나?
  •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미래한국 &
  • 승인 2017.11.0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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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워싱턴과 서울을 달궜던 미중 빅딜론이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방문시 과연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빅딜론은 지난 8월 중순, 키신저 전 국무부 장관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북한 위기 해법(How to Resolve North Korea Crisis)’을 기고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키신저 주장의 핵심은 북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중이 ‘북한 정권 붕괴와 주한미군 철수’를 맞바꾸는 큰 거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이 북한 정권 붕괴를 책임지면 그 반대급부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는 것이다.

키신저의 주장이 반향을 일으키자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이자 백악관 수석전략가인 스티브 배넌도 한마디 거들었다. 배넌은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이 북핵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외교적 ‘딜(거래)’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차이가 있다면 키신저가 북한 비핵화에 방점을 뒀다면 배넌은 이보다 낮은 수준의 북핵 동결에 초점을 맞췄다. 키신저와 배넌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으로 인해 이들의 빅딜론은 미국과 한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 1971년 7월 주은래(周恩來) 전 총리가 닉슨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중국을 방문한 헨리 키신저에게 북경오리를 밀전병에 싸서 건네고 있다.

빅딜론, 왜 나왔나?

빅딜론이 재조명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빅딜론을 주장한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북핵 문제 등에 대해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백악관도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의 주목적이 북한 문제 해결에 있다고 밝혔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키신저의 아이디어를 꺼낼지 지켜 볼 일이다. 중국은 키신저보다 이미 백악관에서 쫓겨난 배넌의 아이디어에 더 관심을 표명할 수도 있기에 더 그렇다.

키신저의 빅딜론이 미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은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였다. 사실 북한 핵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1993년 1차 북핵 위기 이후였고 북한 미사일 문제는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 이후였다.

그때부터 길게 잡아 2016년까지 지속적으로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등장했지만 미국민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북한 핵미사일이 동맹국인 한국이나 조금 더 크게 보면 일본 정도에만 위협을 줄 뿐, 미국은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작년에 4, 5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광명성 4호를 쏘아 올릴 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이 올해 들어 사거리 5000km에 달하는 화성 12형을 시험발사한 데 이어 사거리 1만km에 달하는 화성 14형을 시험발사하자 미국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수소폭탄급인 6차 핵실험까지 단행하자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키신저는 작년 2월에도 미중 빅딜과 관련된 발언을 했다.

키신저는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 발전 고위층 포럼’에서 북한 핵문제와 남중국해 등에 대한 원론적 합의를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 당시만 해도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최대압박 및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정책이다.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여 비핵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외교적 수단과 군사적 수단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외교적으로는 유엔 안보리를 통해, 그리고 독자 제재를 통해 북한을 고립시켜 나가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이미 열 번을 넘었다. 유엔 결의안에 따라 이제 북한은 최대 수출품인 면, 석탄, 철강석, 수산물 등을 수출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북한으로 들어가는 석유 제품의 약 30%까지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대북 독자 제재는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 북한과 합법적인 거래까지도 차단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 총회가 열리는 뉴욕의 한미일 정상회담장에서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할 수 있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사실을 밝혔다. 북한과 합법적인 상품거래, 서비스 및 기술지원을 하는 개인과 기업까지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이 행정명령을 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법률도 곧 제정될 전망이다. 미 하원은 지난 달 북한을 국제금융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초강력 대북제재 법안인 ‘오토 웜비어 북핵 제재법’을 통과시켰다. 상원을 통과하고 대통령이 서명하면 발효된다.

미국은 세계를 향해 미국과 북한 중에서 택일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미 많은 국가들이 북한 외교관을 추방하거나 공관을 축소시킴으로써 북한 고립화에 동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행정명령과 오토 웜비어 북핵 제재법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북한 수출입의 90% 이상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압박과 함께 군사적 옵션도 꺼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매티스 국방장관이 군사적 옵션을 보고했고 이에 따라 미국의 전략자산들이 수시로 한반도에 들락거렸다.

심지어 지난 9월에는 미국의 B-1B 2대와 주일 미군 소속의 F-15C 전투기 6대가 동해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국제 공역을 비행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이 작전으로 인해 북한의 공격 징후를 포착하고 이에 먼저 대응하는 선제공격(preemption)이 아니라 북한의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예방공격(preventive attack)의 가능성까지 거론되었다.

심지어 주한미군 전력과 한국군이 제외된 미국의 단독 공격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키신저의 생각은 미국 행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대북 군사적·외교적 압박과는 다르다. 북한을 상대할 것이 아니라 중국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수단을 동원해 전 세계를 들쑤셔 댈 것이 아니라 중국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국무부 장관 시절에도 그렇게 했다.

그는 담판을 통해 질서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은 주로 상대방에게 미군 철수를 당근으로 제시했다. 키신저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켜 ‘상하이 코뮤니케’를 이끌어 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 천명되었고 그 결과 1979년 미중 수교가 이뤄졌다. 주은래와 협상을 통해, ‘죽의 장막’을 걷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대만을 희생시켰다. 미군을 대만으로부터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는 것이 미중 수교의 반대급부였다.

상하이 코뮤니케 이후 키신저는 전쟁의 수렁에서 미국을 구하기 위해 베트남전을 종결시키고자 했다. 키신저는 1973년 남북 베트남과 베트콩 그리고 미국이 서명한 파리 평화협정을 성사시켰다. 평화협정의 반대급부도 역시 남베트남에서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 그리고 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는 냉전체제를 데탕트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키신저는 이 공로로 그 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데탕트를 가져오는 데 기여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남베트남이 적화되었다. 결국 남베트남을 희생시킨 것이다.

키신저는 압박을 통해 문제 해결을 하지 말고 빅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도 미국과 중국이 직접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 미국이 한국의 언행을 의심하고 또 이런 의심이 지속된다면 미국은 베트남처럼 한국을 패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빅딜의 가능성은?

미중 간의 빅딜은 중국은 북한 정권 붕괴 vs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이다. 중국이 북한 정권을 먼저 붕괴시켜야 하는데 과연 중국이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18차 및 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를 통해 밝힌 것은 위대한 중화민족을 건설하기 위해 두 개의 100년 꿈(夢)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샤오캉(小康) 사회를,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인 2049년 다퉁(大同) 사회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꿈이 실현되려면 대국과의 관계도 좋아야 하고 주변도 안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이 직접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은 중국 스스로 주변국의 안정화와 위배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꿈이 날아갈 수도 있어 선뜻 빅딜에 나서기 어렵다.

둘째,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면 향후에는 대미 지렛대가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기간 중에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이 발표될 전망이다. 새로운 아시아 정책은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정책을 더 확대해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정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북한 정권을 붕괴시킬 것이 아니라 현재의 북한을 그대로 존재시켜야 북한을 대미정책의 칩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정권 붕괴의 반대급부로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지도 따져봐야 한다. 사실 주한미군 철수는 트럼프의 세계 전략 및 지역 전략과 상충될 수 있다. 트럼프는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안보 전략의 기조를 삼고 있다.

또한 이번 동아시아 방문에서 선보일 아시아 정책은 오히려 중국을 더 강하게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더군다나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은 대중 견제를 위한 핵심 군사력이다. 그런데 만일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면 이는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의 후퇴를 의미한다. 이는 미국의 전략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빅딜은 말 그대로 큰 것을 주고받는 것이다. 일단 중국은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길 바라지 않고 미국도 주한미군을 당장 철수시킬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딜은 한 번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밀고 당기기를 몇 번 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만일 미국이 중국에게 주한미군 철수+α의 당근을 제공하면 중국이 응할 수도 있다. +α란 중국이 영해로 규정하고 있는 남중국해 대한 미국의 양보, 또는 무역 문제에 대한 중국의 양보, 그리고 김정은 정권 붕괴 이후 친중 정권의 등장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미국도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제거되고 한반도 통일도 달성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주일 미군을 증강시키고 기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미군을 재배치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새로운 동아시아 전략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몇 가지 더하기와 빼기가 이뤄진다면 북한 정권 붕괴 vs 주한미군 철수라는 큰 틀이 성사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트럼프는 중국 방문에서 키신저의 빅딜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트럼프는 19차 공산당 당대회까지 시진핑 주석을 배려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에게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청구서의 핵심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에 대한 것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한미군 철수 같은 것은 논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지 않을 경우, 키신저의 빅딜론은 다시 회자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 키신저의 빅딜론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빅딜의 참석자가 누구냐는 것이 더 큰 관심 사항이다. 빅딜의 상대는 미국과 중국이다. 따라서 빅딜의 과정에서 이들의 이익만 반영될 뿐 한국의 이익은 철저히 무시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한국은 과거 키신저가 요리한 적이 있었던 대만이나 베트남 정도의 국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신저의 빅딜론은 오랫동안 우리 의식을 지배할 것이다. 미중 빅딜 속에서 한국이 패싱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동맹의 핵심이다.

미국이 한국의 언행을 의심하고 또 이런 의심이 지속된다면 미국은 한국을 패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배넌의 빅딜이 현실화될 수도 있고 북미간 빅딜이 가능할 수도 있다. 안테나를 세워 정보를 수집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맹의 신뢰도를 최고로 끌어올리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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