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조업 부흥 전략 ‘리쇼어링’과 ‘스마일 커브’
미국 제조업 부흥 전략 ‘리쇼어링’과 ‘스마일 커브’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9.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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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가 위기에 처한 이유

‘엿장수 마음’이라는 말이 있다. 가난했던 시절, 동네 코흘리개들은 엿장수가 나타나면 집안에 있는 빈 병이나 고물을 꺼내다가 엿을 바꿔 먹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엿장수의 가위질을 애타는 눈으로 바라봤다.

아이들이 가져 온 고물의 가치는 엿장수 마음이었다. 아이들은 엿장수가 잘라 주는 엿의 가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끔 멀쩡한 냄비를 가져다 엿바꿔 먹던 철부지들은 엄마에게 호되게 얻어 맞곤 했다.

한미 FTA가 지금 그런 엿장수 가위질에 놓였다. 미국은 한미 FTA로 인해 미국의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국내 일자리가 줄었다며 한미 FTA를 폐지하고 재협상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한미 FTA로 손해를 봤기에 그런가.

지난 8월, 산업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2012년 FTA 발효 이후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수지가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2016년 기준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 규모는 200억 달러를 초과했다.

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FTA 발효 이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자동차, 일반기계, 철강, 기타제조업 등의 제조업종이 이를 주도했다. 미국은 이러한 무역 역조 상황이 한국의 부당한 보조금 지급과 미국산 자동차 수입 규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주장만 놓고 보면 무엇이 부당하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미국은 덤핑을 하는 국가의 수출품에 관세를 매긴다. 따라서 만일 한국이 철강을 미국에 덤핑으로 수출했다면 미국은 관세를 매기면 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왜 한미 FTA 전체를 문제 삼는 것일까.

여기에는 한 가지 우리 국민들이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한 문제가 있다. 최근 미국 철강업계는 한국산 철강제품이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 등 한국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누리며 원가 이하 가격에 덤핑 판매되고 있다는 의견서를 미 무역대표부(USRT)에 제출 했다.

아울러 미국 철강업계는 중국이 한국에 철강을 덤핑으로 팔고, 한국은 이를 이용해 못과 같은 철제품을 싸게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한마디로 ‘불공정’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자동차의 경우, 한국은 수입 자동차의 브레이크 등을 노란색으로만 인정하고 또 차량의 바닥이 지면으로부터 12cm 이상 올라야만 한다는 규제가 미국 자동차 수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산업용 전기를 싸게 이용해 생산하는 철강의 문제라든지, 중국산 철강을 덤핑가격으로 수입해 미국에 싼 가격으로 철강제품을 공급하는 한국의 수출은 미국의 생산자들의 입장에서는 불공정할 수 있다. 한국, 중국 모두 국가가 그 생산에 세금으로 지원을 한다면 이는 보조금이 되며 상대국은 이에 대해 관세로 대응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의 한국 자동차 수출의 문제는 그 본질이 규제에 있다기 보다는 국내 소비자들이 미국 차의 연비와 스타일에 선호도가 떨어지고 대신 유럽이나 일본 자동차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점이다. 이처럼 미국이 한국과 무역관계에서 지적하는 문제들은 옳은 것도 있고 빗나간 것도 뒤섞여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연례적인 통상회담을 통해 상호 의견을 조정해서 수렴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왜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FTA 일체에 대해 그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던 것일까. 이 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미국의 전략에 대응할 수 있고 또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내다볼 수 있게 된다.

 

한미 FTA와 트럼프노믹스

LG경제연구원은 지난해 연구보고서를 통해 트럼프노믹스의 방향을 분석했다. 당시 참고했던 데이터는 백악관 홈페이지에 소개된 ‘6대 정책 이슈’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기간부터 당선자 시절을 거쳐 취임할 때까지 각종 연설이나 기자회견, 트위터 등을 통해 밝혔던 약속들을 여섯 개의 주제로 정리했는데, 트럼프노믹스 경제정책 방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노믹스는 에너지 정책의 경우 환경 비용, 국제협력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던 과거와 달리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외교 분야 역시 일방적인 협정 폐기나 재협상 요구가 초래할 신인도 하락 문제를 걱정하기보다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정책 결정의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밝혔으며, 중국에 대해서는 아시아 주변국들과 간접 포위전략을 모색하던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직접적인 대중 견제와 압박을 예고했다.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감세와 규제 완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고소득층 증세를 검토하고 교육을 강조하던 민주당 정부 때와는 확실히 다른 움직임이다. 국방과 치안 수준을 높이기 위한 의지도 강하다. 안보 및 국민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항인 만큼 아끼지 않고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무역협정에 대해서는 자유무역 확산이 국내 산업 몰락과 일자리 감소의 주범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며, 모든 FTA를 미국의 이익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개정해서 일자리를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한다.

얼핏 보면 이 여섯 가지 중에는 외교, 국방 등 경제와 별 상관없는 이슈가 절반이 넘는다. 하지만, 한 발 안으로 들어가면, 에너지 자립을 통해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낮춰 미국 경제의 자급률을 높이고, 안보와 치안을 앞세운 이민법으로 미국 노동시장의 경쟁 압력을 통제하는 등 그 하나하나가 ‘트럼프노믹스’를 관철시킬 때 요긴하게 쓰일만한 수단들임을 알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 전체에 그 실효성을 중지시키려는 의도는 다름아닌 트럼프노믹스가 가진 ‘보호무역’과 ‘리어쇼링’이라는 정책 목표 때문이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경제이론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 즉 감세를 통해 생산을 늘린다는 레이거노믹스의 전략을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역적자는 나쁘다’는 과거 중상주의적 사고를 한다. 이러한 충돌하는 경제론을 트럼프 정부가 취하는 이유는 바로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다. 동시에 미국 중산층들이 느꼈던 ‘허약한 미국’의 자괴감을 보상해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힘이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 역시 이 ‘미국 우선’에 맞춰져 있는데, 미국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 제품들을 미국인들이 구매하는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리쇼어링’이라는 방법을 통해 실현된다.

즉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들을 다시 미국내로 불러들이는 한편, 미국의 기업과 자본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미국을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우선주의와 미국 제조업

트럼프노믹스가 이러한 미국우선주의를 채택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경제적 현실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에 있다. 어느 정도일까. 현대경제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배경에는 쌍둥이 적자 규모의 확대가 존재한다.

2010년 이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의 증가는 2015년에 -7526억 달러를 기록하였고, 이는 명목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인   -8373억 달러(2006년)에 근접한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의 대상국으로 직접 언급한 중국, 멕시코의 비중이 2010년 53.4%에서 2015년 56.0%로 증가했다. 한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하는 무역적자 규모는 2015년 -283억 달러로 한미 FTA발효(2012년) 이후에도 매년 증가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공공부채 역시 심각하다. 2010년대 들어 미국의 공공부채는 10조 달러를 넘어섰고 2020년까지 16조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대상국과의 무역적자 확대가 겹쳤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적극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 결과 현재까지 총 14개, 20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발효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무역수지 측면에서 미국이 손해를 입은 협상은 NAFTA, 이스라엘, 한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이라고 지적한다. 그 적자 규모는 2016년 달러가치 기준으로 미NAFTA에서 약 2조 2500억 달러, 이스라엘 FTA에서 1500억 달러, 한국 FTA에서 1100억 달러의 실질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미국은 환율조작국 평가, 반덤핑 관세 등을 통해 중국 등 대규모 무역적자가 발생하는 특정 국가들을 견제하는 방법을 취했다.
미국은 2016년 2월 ‘교역촉진법’을 발효하면서 대미무역수지 흑자,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환율시장 개입 등의 지표를 통해 환율 조작국에 대한 평가 기준을 마련했다.

2016년 10월 환율 조작국 평가에서 한국을 비롯한 중국, 독일, 일본, 대만, 스위스 등 6개국을 ‘관찰 대상국’으로 분류했고 환율조작국 평가뿐만 아니라 철강, 가전 등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는 등 수입 규제도 확대했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미국 노동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과 노동시장참가율이 함께 낮아지면서 동시에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도 크게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대통령경제자문 보고서(2016)에 따르면 노동시장참가율의 감소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경기 사이클 효과가 약 60%를 설명한다고 분석되어 있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은 2008년 이후 제조업의 일자리가 약 145만 개 감소하여 제조업부문 근로자가 노동시장에서 구직을 포기했을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해 눈길을 끈다.

스마일 커브가 한미 FTA를 움직인다

미국 경제의 제조업 침체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를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심순현 연구원은 ‘스마일 커브(Smile Curve)’라는 개념을 이용해 설명한다.

스마일 커브 이론은 어떤 제품의 가치사슬을 따라 부가가치를 측정하면 중간부분에 해당하는 제조 단계의 부가가치는 낮고 양 끝에 위치한 연구개발, 디자인, 제품 기획 등 제조 전(前) 단계와 판매, 서비스 등 제조 후(後) 단계의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으로, 그 부가가치 분포 곡선의 모양이 웃는 모습과 비슷해 스마일 커브라고 부른다.

무역이 제한적이고 국가간 분업이 활발하지 않던 과거에는 제조 공정을 비롯해 모든 영역의 부가가치가 비슷해서 이 곡선이 수평에 가까웠다. 자연히 좋은 일자리의 비중도 높았다. 그러나 무역이 확대되고 후발 신흥국들의 제조업 참여가 늘어나면서 스마일 커브의 양쪽 끝부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제조 공정의 모듈화가 진전되면서 후발 제조업 국가로의 해외 이전(off-shoring)은 더 빨라졌다. 제조 전 단계나 후 단계에 비해 중간 제조 공정의 진입 장벽이 낮아 경쟁이 치열해지고 부가가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 같은 업종 내에서도 어떤 업무에 종사하느냐에 따라 임금수준과 일자리 질의 격차가 확대됐다. 자연히 가운데 영역, 즉 제조 공정 비중이 높은 산업 종사자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위기감이 커졌고, 미국 중부의 전통 제조업 지역(Rust Belt) 유권자들은 그 대안으로 제조업 부활을 약속한 트럼프 후보를 선택했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이 현실화되려면 이 스마일 커브의 수평화가 필수적이다. 전통 제조업 근로자들에게 높은 임금의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가운데 부분 제조 영역의 부가가치가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히 양쪽 끝에서 가져가던 부가가치는 줄어들어야 한다.  즉, 세계화가 확산되기 이전처럼 조금 더 평평하고 무뚝뚝한 스마일 커브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트럼프노믹스는 미국의 제조업 부활이 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목적에 따라 한미 FTA든, 자유무역이든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해 현실적인 이해조정의 이니셔티브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강대국의 일방주의적 국제정치노선이 무역질서에서도 재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노선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일본, 러시아, EU 등도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할 것인가는 숙제로 남는다.

다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은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정책은 결국 ‘경제의 정치화’를 통해 국가간의 이해 충돌로 변질되고 각국 정치세력이 이를 포퓰리즘으로 활용하면서 국제적 분쟁과 전쟁의 위기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역사적 경험이다. 한미 FTA를 대하는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비상한 각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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