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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같은 충성심으로 이숙번을 제친 ‘소년입각’ 박은

기사승인 2017.09.13  13: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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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명재상을 찾아서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태종 집권 18년 중에서 태종 16년(1416년)은 정권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그 해 11월 6일 함경도에 있던 왕실의 능묘들을 돌아보러 갔던 태종의 최측근 하륜이 그곳 정평(定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종의 객사였다.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륜의 뒤를 이을 태종의 복심(腹心) 재상은 누가 될까? 사실 의문의 여지없이 이숙번(李叔蕃 1373~1440년)이 뒤를 잇는 것이 순리라 할 수 있다. 1차 왕자의 난은 하륜과 이숙번 두 사람이 없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종과 이숙번 사이에는 둘 만이 아는 비밀이 있었다.

태종 9년 8월 10일 태종은 3년 전의 1차 선위파동에 이어 2차 선위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1차 때 이미 겪어본 터라 신하들은 더 이상 태종의 노림수에 넘어가 어리석은 희생을 당하지 않았다. 결국 20여일 만에 흐지부지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13일날 신하들과 대간들의 선위 만류 상소가 이어졌고 태종은 병 때문에 선위하려 한다며 자기 뜻을 꺾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아주 흥미로운, 그리고 사소한 듯하면서도 중대한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이날 이숙번이 직접 태종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이숙번은 선위는 잘못된 것이며 따라서 직접 정사를 챙겨 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태종은 “천재(天災)가 바야흐로 심하니, 내가 하는 일이 하늘의 뜻에 부합하지 않을까 두려워 선위하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숙번은 선위를 했다고 해서 재앙을 없앴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며 “정사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태종은 “그러면, 어느 때나 이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고 이숙번은 (아마도 나름대로 8년은 더 남았다고 생각해서인지) 무심결에 “사람의 나이 50이 되어야 혈기가 비로소 쇠하니, 나이 50이 되기를 기다려도 늦지 않습니다”고 말하는 불충(?)을 저지르고 만다.

▲ 향토유적 제25호로 제정된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당동2로 74-16에 위치한 평도공 박은 묘역 / 파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참조

 

선위 파동에 휘말린 이숙번은 실권

이 때 태종42세, 세자15세였으니 8년 후면 태종은 50세가 되고 세자는 23살이 된다. 실제로 이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1등 공신 중의 1등 공신인 이숙번은 결국 태종 17년 초 세자에게 아부하려 했다는 죄로 의금부에 갇혔다가 유배를 떠나고 다시는 한양 땅을 밟지 못한 채 유배지에서 삶을 마치게 된다. 이것이 권력이다.

이숙번이 이미 이 때부터 비워준 하륜의 후임 재상을 차지한 사람은 뜻밖의 인물 박은( 1370~1422년)이었다. 열여섯 나이에 문과에 2등으로 급제했고 고려 말 신진 사대부로 조선 건국에 공이 큰 정도전, 조준, 남은 등과 어울렸던 박상충(朴尙衷 1322~1375)의 아들이라는 등의 배경이 있었고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는 장점들이 있었지만 이숙번을 뛰어넘기에는 공로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굳이 공을 따지자면 1차 왕자의 난 때 춘주(春州-춘천) 지사로 있으면서 지방 군인들을 동원했고 2차 왕자의 난 때 형조지사로 있으며 정도전에 도움을 주어 좌명(佐命)공신 3등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태종은 1416년(태종 16년) 5월 25일 유정현(柳廷顯)을 좌의정, 박은을 우의정으로 임명한다. 이는 곧 박은을 재상의 최고 실권자인 좌의정으로 올리기 위한 사전 준비였다. 이 때 박은의 나이 47살로 이숙번보다 3살이 많기는 했지만 파격적인 조치였다. 이른바 소년입각(少年入閣)이었다.

비상하는 박은과 추락하는 이숙번의 대비는 열흘 후인 6월 4일 실록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날 태종은 안성부원군(安城府院君) 이숙번에게 농장(農庄)에 거주할 것을 명했다. 사실상의 연금 조치였다. 그에 앞서 태종은 막 우의정이 된 박은을 불러 이숙번의 죄상을 일러준다. 이는 곧 태종이 그런 죄로 문책할 테니 먼저 우의정이 문제를 제기하라는 뜻이다.

과연 박은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이숙번을 타격할 수 있는지를 보려는 은밀한 의도도 있었다. 큰 죄랄 것은 없었지만 당시 태종은 가뭄을 걱정하고 있는데 이숙번은 자신에 대한 홀대를 이유로 여러 달째 조정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사실 다른 신하였으면 목이 달아나가거나 유배를 갔겠지만 이숙번이었기에 이런 몽니도 가능했다. 그러나 태종은 참는 데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바로 이 날 좌대언(左代言) 서선(徐選)이 이숙번에게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보고를 올린다.

“지난 5월 25일에 신이 마침 강무(講武-사냥)의 장소를 여러 곳이 아니라 한군데로 정하는 일 때문에 명(命)을 받고서 이숙번의 집에 이르니 이숙번이 말하기를 ‘오늘날의 정사는 어떠한가?’라고 묻길래 대답하기를 ‘박은이 우의정(右議政)이 되었다’라고 하니 이숙번이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박은은 일찍이 내 밑에 있었는데 명이 통하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은 필시 ‘어찌 하여 나를 버리고 박은을 천거하였는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가 치명적이었다. 사실 태종의 성격상 이숙번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면 당연히 “네가 그 마음을 어찌 안다고 그렇게 임의로 풀이하는가?”라고 했겠지만 이미 애정이 식은 상태에서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대신 표현해준 것이었다.

결국 반년 후에 이숙번은 사실상 중앙조정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태종은 박은과 손을 잡고 조정 일을 펼쳐가게 된다. 이미 그보다 앞서 태종 16년 11월 2일 박은은 좌의정에 오른다.

재상 박은의 무기는 하륜 못지않은 충성심이었다. 이숙번처럼 거들먹거리지도 않았다. 재위 16년을 맞은 태종은 이미 권력정치의 달인이었다. 특별히 예전처럼 스승 같은 신하 즉 하륜형 재상은 필요가 없을 때였다. 거기에는 자기정치를 할 우려가 있는 이숙번보다 박은이 적임자였는지 모른다.

▲ KBS에서 방송된 사극 ‘왕자의 난’속의 박은 / KBS 영상캡처

 

태종은 신임, 세종은 경계

그런데 이런 박은에게도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위기가 2년 후에 찾아온다. 1418년 6월 3일 태종은 세자를 폐위시키고 충녕대군으로 하여금 세자를 잇게 하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다시 두 달도 안 돼 왕위를 새로운 세자에게 넘기는 더 충격적인 결단을 내린다.

이 무렵 신하들의 은밀한 정치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좌의정 박은은 태종이 선위하려는 뜻을 짐작하여 알고는 세자의 장인인 심온(沈溫 1375~1418년)에게 넌지시 묻는다. 두 사람은 라이벌이었다.

박은은 심온에게 “요사이 임금의 의향을 그대가 아는가”라고 물었다. 내선(선위)의 의사를 알고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심온은 이 말을 즉각 사위 충녕대군에게 알렸다. 충녕은 이런 말을 들으면 즉각 부왕 태종에게 고하는 조심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충녕은 이 말을 특히 괘씸하게 여겨 태종에게 즉각 고했다. 그러나 의외로 태종의 반응은 별다른 게 없었다. 실록에 따르면 오히려 선위를 한 후 세종이 태종에게 “박은이 어느 날 심온에게 내선한다는 일을 말하였으니, 이것으로 보면, 박은은 순결한 신하가 아닙니다”고 말하자 태종은 “내가 내선하겠다는 말을 하였고, 박은이 직접 이것을 들은 까닭에 그런 말을 한 것이다”며 박은을 변호했다. 박은에 대해 세종의 시각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부왕 태종은 대단히 긍정적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 해 12월 심온은 군사의 권한은 상왕인 태종에게 있다는 명을 어겼다는 죄에 연루돼 모진 고문 끝에 세상을 떠난다. 실은 외척 제거를 위한 태종의 사전 조치였고 이를 철저하게 뒷받침한 인물이 좌의정 박은이다. 태종에게는 충신이었지만 세종에게는 미운 털이 박혔다. 태종은 세종 4년(1422년) 5월 10일 눈을 감았다. 그런데 박은은 바로 전날 세상을 떠났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webmaster@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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