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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앙가라 강에서…

기사승인 2017.09.13  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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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의 자유여행] 자유시 참변 추모下

6월 24일부터 7월 6일까지 역사정립연구소(소장 조형곤) 주관으로 자유시 참변 96돌을 추모하는 답사여행이 있었다.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28일, 러시아 자유시(알렉셰프스크, 1925년부터 스보보드니로 개명)에서 일어난 대한독립군단 소속 한인독립군 학살 사건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 계열과 상해파 고려공산당 계열 간의 세력 주도권 충돌로 빚어진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제국주의 일본과 러시아 공산당의 음모에 따른 독립군 제거 작전의 성격이 더 강하다. 이 사건으로 대한독립군단은 완전히 궤멸되었고, 이후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 무장운동을 하던 독립군 세력은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자유시 참변의 역사 현장을 답사한 여행기 하편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 우리보다 더 끔찍한, 러시아판 자유시참변이다. 즈나멘스키 수도원 옆의 콜챠크 제독의 동상.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난다면 앞으로 러시아 사람들과 깊이 나눌 이야기가 넘칠 것이다.

 

리스트비얀카 -아! 바이칼! 첫 비나리


스보보드니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꼬박 만 이틀을 대륙횡단열차로 달렸다. 이럴 때는 도 닦는 이도 성직자도 설핏 짜증이 묻어나야 사람 맛이 나는데 웬걸 열두 사람 모두 깨달은 이들 마냥 이틀을 느긋하게 보낸다. 모두 그 까닭을 안다. 스보보드니 제야강에서 말로 못할 그 무언가를 가슴에 담아왔기에 다들 더욱 맑아지고 밝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한독립군단이 끌려갔던 이르쿠츠크로, 코리안과 유라시아 ‘초원의 길’의 우물인 (말로만 듣던) 바이칼로 가는 것이다.

따뜻한 밥은 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어딘지도 모르고 포로로 끌려가던 대한독립군단이, 20만 러시아 동포들이, 소련군들이 힘들세라 얼마 동안 멈춰 섰을, 치타와 울란우데를 지나친다. 이윽고 끝도 없는 타이가 숲~ 자작나무와 소나무의 벌판을 달리다가 비로소 어제 저녁 ‘바이칼 환상특급열차’ 철길에 들어서며 사람들은 이틀 동안 모았던 숨을 마음껏 뱉어낸다. 그리고 허파 깊숙이 ‘가이아의 푸른 눈’ 바이칼을 들이쉬고 두 눈에 담는다.

늦은 밤 이르쿠츠크. 여행사라면 적어도 4백은 받아야 할 삯을 2백이란 우주 최저가로 치렀기에 비행기-기차 값을 빼고 나면 자린고비마냥 살아야 한다. 열둘 모두 돈 없는 배낭족이 되어 곯아떨어진다. 다음 날 모처럼 늦잠을 자고 70km 남짓 떨어진 리스트비얀카로 간다.

시베리아에서 드물게 낙엽송이 우거진 곳이며 도시 이름도 그에서 땄다. 오가는 길 내내 앙가라 강줄기가 보일 듯 말 듯 우리와 벗한다. 리스트비얀카에서 바이칼 유람선을 탔다. 앙가라가 시집 가려던 길목에서 줄곧 애태우며 낯을 가리던 바이칼의 하늘이 열린다. 놓칠세라 바이칼 첫 비나리를 바친다.

“물안개 서걱대는 / 리스트비얀카 언덕에서 / 잔잔히 일렁이는 / 바이칼을 만납니다. // 쪽배에 몸을 싣고 / 말없는 바다를 스치우니 / 구름 덮인 하늘은 / 바이칼에 기대어 잠듭니다. // 아 바이칼이여. // 시간이 멈춰버린 / 가이아의 푸른 눈동자 위로 / 즈믄 해를 거슬러 / 가뭇없이 어린 아이가 절하옵니다. // 그단새 묻힌 이야기를 / 어찌 무딘 혀로 이르겠나이까. / 오늘 이리 가슴을 열어 / 푸른 바람에 안깁니다. // 시집 간 앙가라와 / 장가 간 아무르를 아울러 / 다시 이 바다에 서겠노라 / 그윽한 하늘에 아뢰나이다. // 삼가 여쭈노니 / 저희들을 부르한으로 삼으소서. //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이다.”

 

알혼 첫 날 - 반만년 코리아 하늘겨레의 외갓집

드디어 바이칼의 눈동자 알혼 섬으로 떠난다. 이르쿠츠크 중앙시장에서 차를 빌려 벌판을 가르고 고개를 넘어 ‘말로예 모레’(작은 바다)를 건너 210km 떨어진 알혼의 후지르 마을로 간다. 탁 트인 벌판이다. 스텝과 타이가의 사잇길이라 할까. 드넓은 초원이 끝없이 이어진다. 가끔 하릴없이 소들이 길을 막으니 그 핑계로 내려 가슴을 열어도 좋으련만 긴 기행에도 장사가 없을까, 모두 앞사람 제사 지내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에 쉴 짬이 없으니 입맛만 다신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난 열두 마리 킹콩이 느닷없이 나타나자 들판의 메뚜기 제국은 극심한 혼란에 사로잡힌다. 땅만 말고 고개를 들어 저 하늘을, 저 벌판 끝을 보라. 바이칼 서쪽에서 서부 몽골까지 이어지는 초원의 피바람 내음을 맡았는가. 강건성세(康乾盛世)의 절반이 넘는 1690~1760년에 러시아에게 시베리아를 내주고 ‘초원의 길’에서 청과 마지막 유목제국인 오이라트부 준가르의 운명을 가르는 전쟁이 벌어졌다. 그 끝은 제노사이드였으니 청은 참으로 잔인하고도 어리석었다. 왜 한족을

만주족으로, 만한전석처럼 만한일체로 만들려고 했는지 잊어버렸다.
그에 앞서 순망치한조차 몰랐던가. 러시아는 손쉽게 시베리아와 태평양으로 나아갔다. 초원의 야망이 이뤄지자마자 강건성세는 시나브로 저물어간다. 늑대 잡다가 불곰 불러들였으니 그 인연의 끝은 오늘로 질기게 이어진다. 아! 오늘! 초원의 들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스텝과 타이가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이칼 초원 부리야트의 초원에서 준가르의 피 냄새를 맡으며 비로소 깨닫노니, 초원의 야망 초원의 피바람 그 되풀이를 갈라치며 셋째 초원의 길을 여는 역사는 그 얼마나 비장하고 장엄한가.

바얀다이에서 알혼으로 가는 고갯길은 참으로 그윽하다. 칭기스칸의 겨울행궁, 거룩한 허더아랄에 온 듯하다. 지나다보니 저 멀리 바이칼을 내다보는 언덕배기에 웬 러시아 순례자의 동상이 서 있다. 러시아판 시베리고(아메리고) 베스푸치라고 할까. 그러나 부리야트 사람들에겐 재앙의 처음이다. 이윽고 사휴르타 선착장이다. 가슴이 설렌다. 말로예 모레를 건너 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한참을 가다 아뿔사! 미아리 가는 버스가 멈춰서 버렸다. (우리 중고차가 아직도 널려 있다. 부산 이름도 꽤나 많다.)

마침내 후지르 마을. 코뚜레도 멍에도 없는 소들이 내키는 대로 출퇴근 하는 곳. 반만년 코리아 하늘겨레의 외갓집이다. 내일 우리는 후지르의 부르한 바위 앞에서 마지막 비나리, 우리 뿌리를 찾고 앞날을 가늠하는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열성조시여. 부디 저희를 이끌어주소서.

 

알혼 이튿날 - 이제 우리는 셋째 초원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바이칼은 발칸이나 부르한과 소리나 뜻이 비슷하다. 물과 뭍이, 사람과 하늘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옛 유라시아 ‘초원의 길’의 우주관을 보여준다. ‘Bright Khan’이든 ‘샤먼의 바다’든 하늘의 뜻을 받드는 임금이기도 하고 그가 하늘을 받드는 곳이기도 하니 곧 유라시아의 하늘 못 천지(天池)다. 알혼은 아사달과 같다. 지구마을에서 맑은 날이 가장 많은 곳 가운데 하나라 한다. 바이칼은 대한민국 휴전선 이남의 1/3에 가까우며 알혼은 거제도 곱절 크기다.

천지와 아사달이 나오니 환웅의 홍익인간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사베리아와 ‘초원의 길’ 곳곳에 조금씩 다르게 퍼진 게세르 신화(Geser myth)는 서로 닮은 영웅 서사시이다. ‘요호라’(강강술래)를 부르며 영고-동맹-무천이나 나담과도 같은 하늘잔치가 열리는 그 마니산(머리뫼)인 예헤요르도 산에 가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이 뿐인가. ‘나뭇꾼과 선녀’ ‘심청과 인당수’까지 캐면 캘수록 발을 떼지 못하는 외갓집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말 그대로 깡촌이다. 다시 말해 열사흘 동안 다른 곳은 우리가 다 짜서 돌아다녔지만 이 곳만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다. 한 주일씩 머무르며 느긋하게 다니고 가끔 천막 치고 잔다면 모를까, 어쩔 수 없이 북쪽 길로 가는 차에 올라탄다. 먼저 후지르에 이어 둘째 큰 하란츠이 마을의 너른 벌판에 선다. 딱 보니 환인현(桓仁縣) 오녀산성이나 뉴멕시코 메사 같은 아사달이다. 스탈린의 악몽이 남은 삐에씨안카를 지나 유원지 놀이기구나 탄 듯 앉아만 있어도 절로 배가 쑥 꺼지는 덜컹덜컹 벌판과 나무터널을 섬이 아닌 듯 달린다.

넉넉히 수만의 엑스트라를 풀어 부여와 고구려 전쟁 영화를 찍을 만한 곳이다. 이윽고 상고사의 인신공양 이야기가 남아 있는 사간후시운 곶의 독수리 삼형제 바위다. 그리고 알혼의 북쪽 끝 하보이 언덕이다. 뜻 그대로 송곳니다. 곳곳에 세르게(솟대나 장승)가 진을 치고 있다. 잔잔한 말로예 모레와 드넓은 ‘발쇼예 모레’(큰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깎아지른 사랑의 언덕을 지나 우주르이 만이다. 자갈밭이라 알혼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곳이다. 이리 좋은 날이면 사진도 사진이지만 지긋이 눈을 감고 바람에 몸을 맡길 만하다.

갔던 길을 되돌아와 저녁을 든 뒤 추모 기행의 마지막 비나리 터로 간다. 알혼에서도 가장 거룩한 곳, 곧 부르한 바위다. 노을이 은근히 둘러싸니 자못 신비롭기까지 하다. 우리 열둘은 곧 비나리의 사람이 되었다.

세 번째라 다들 절하거나 기도를 올리거나 묵념을 하거나 누구랄 것 없이 마치 앞에 계신 듯 한마디씩 바치는데 참으로 하나같이 간절하다. 이북에서 노예살이 하는 25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을 살려주소서. 탄핵반란을 진압하고 자유통일 대한민국을 이루도록 도와주소서. 부디 저희들이 셋째 ‘초원의 길’을 열도록 이끌어주소서. 코리아를 넘어서서 지구마을이 무등과 홍익인간과 공존공영의 천년문명으로 들어서게 가르쳐주소서.

함께 올린 비나리의 몇 대목이다. “다시 바이칼 앞에서 옷깃을 여밉니다. // 하늘새 까레이가 머물던 곳 바이칼. / 부여와 고구려의 태가 묻힌 바이칼. / 수천 년 초원의 길을 지키던 바이칼. // 이 곳은 25만 백군들이 가라앉은 무덤. / 이 곳은 대한독립군단의 뿌리마저 삼킨 늪. / 이 곳은 까레이스키가 노예로 끌려간 어둠. / 이 곳은 신의주 자유의 얼이 사위던 하늘. // 아! 바이칼이여! / 오늘 우리들은 스보보드니 너머 / 이르쿠츠크로 기꺼이 달려왔습니다. // 3500 대한독립군단의 희생이 / 어찌 부질없다 하겠습니까. / 님들의 거룩한 발걸음이 계셨기에 오늘 / 저희들이 이 바이칼에 올 수 있었습니다. // 이 까레이의 하늘과 거룩한 바이칼 / 그리고 초원의 길을 걸고 다짐합니다. // 이제 우리는 유라시아의 길, / 셋째 초원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열흘에 이르는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저마다 가슴에 알혼의 해가 내려앉는다. 코리아를 넘어서서 수천 년 유라시아 초원의 길, 그 얼과 넋이 우리와 함께 함을 느낀다. “저희들, 코리아를 넘어서서 74억 인류를 받드는 비나리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서니 그제서야 후두둑 빗줄기가 땅을 내려친다. 모처럼 편안히 함께 하는 뒤풀이. 스보보드니처럼 거친 천둥 번개와 억센 빗소리가 감미롭다. 세 차례 정전마저 흥을 돋운다. 잊지 못할 알혼의 밤이여!

▲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확정된 청-러 국경선. 1858년 아이훈 조약으로 아무르강 이북을, 1860년 북경조약으로 연해주를 러시아에 내주면서 청은 무너져간다.

 

알혼 사흘 - 다시 오리라. 오누이 호수와 쿠리칸의 성

아쉽다. 알혼 마지막 날이다. 얼마나 참았는지 어제 밤부터 내린 비는 당최 그칠 줄을 모른다. 고국의 동포들은 땡볕에 아우성이라는데 우리는 아주 시원하게 심지어 으슬으슬 소름까지 맛보며 알혼 남쪽 길에 오른다. 한호이 호수다. 아래는 물바다고 위는 물안개 그득함에도 그림은 외려 오롯하다. 모래톱이 쌓여 길을 내니 바이칼과 한호이 석호(潟湖)는 지도에서 보는 바이칼과 홉스골 호수처럼 오누이가 되었다. 다음에 오면 비가 오든 말든 꼭 천막 치고 하루를 보내고 싶다.

안타깝다. 비바람에 다른 곳은 제대로 뵈는 곳이 없다. 낮밥마저 차 안에서 먹었다. 그래도 하르고이 언덕과 쿠리칸의 성만큼은 꼭 가야 된다고 노래를 불렀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지 알혼은 다음에 보라 한다. 미끄러운 길을 비켜서 그 버금가는 곳에 내려 영혼의 허기를 간신히 달랜다. 반드시 오리라. 비록 아는 게 없어 말할 수는 없지만 쿠리칸의 성이 어찌 코리와 구려와 고구려와 맞닿는다 아니 할 수 있겠는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간신히 떼어 이르쿠츠크로 간다.
                

이르쿠츠크 마지막 날  - 5군단 거리, 저희들이 뒤를 잇겠습니다!

처음에 언제 열사흘을 보내나 막막하더니만 어느새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바쁘다. 대한독립군단 선조들이 854 무궁화 송이로 포로로 끌려가 무너지신 5군단 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에 앞서 이르쿠츠크 공산당 결성 대회장부터 들른다. 이제는 극장으로 쓰는 곳이다. 마음에 들든 말든, 역사란 빛과 그늘을 함께 간직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두 곳을 들른다. 바로 키로바 광장과 즈나멘스키 수도원 옆의 콜챠크 제독 동상이다.

“얼어붙은 앙가라 강에서 / 덧없이 스러진 콜챠크 제독이여. / 키로프 그리고 체코군단의 배신을 / 어찌 잊을 소냐마는 그 탓에 / 나름 중무장한 대한 독립군들이 /
봉오동 청산리대첩의 신화를 일구었나니 / 오묘한 인연의 저울을 어찌 잴까나.”
비록 한 세기가 다 되어가지만 콜챠크 제독 그리고 바이칼 얼음장 아래 묻힌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와 백군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올해는 볼셰비키 혁명 한 세기의 해다. 역사의 섭리를 어찌 알겠냐마는 러시아판 자유시참변인 그 음모와 배신이 통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70여 년의 악몽과 1억이 넘는 제노사이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 되지 않았기에 봉오동 청산리 대첩과 자유시참변이 일어났으니 그 무상함을 일러 무삼하리오. 그를 떠나, 탄핵반란에 져서 오늘은 패잔병이 된 우리에게 이는 남의 이야기로 들을 수 없는, 살아 있는 비극이다. 그들의 몫까지 우리는 반드시 되살아날 것이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드디어 ‘5군단 거리’(Armii 5th St)를 찾았다. 스보보드니에서 만 이틀 열차 타고 올 때부터 노래를 불렀다. 하여 열두 분 모두 틈날 때마다 어디일까 찾아본 덕분이다. 그 끝은 이름난 드라마 극장이었다. 열두 사람은 그 극장 일주문 아래에서 거리를 바라보며 선열들의 넋을 달래고 얼을 받들어 모셨다. 카톨릭, 불교, 기독교, 종교 있는 분들은 다 나오셔서 기도를 올리고 함께 묵념을 하였다. 그리고 맹세하였다.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선열들의 뜻을 받들어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아직 남았다. 우리는 이르쿠츠크에 있는 여러 국가기록보존소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운동권들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을 뿐만이 아니라 바람직한 한·러 관계의 미래를 만들려 한다면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밝힘이 먼저다. ‘자유시참변’과 ‘강제이주 만행’과 ‘신의주 반공학생의거’에서 희생당하고 이까지 끌려오신 선열들과 조상들의 기록을 요청하였다. 만나보니 이미 북경이나 동경에서 많이 다녀갔다고 하였다. 그럴 줄 알았다. 누구를 탓하랴. 우리부터 길을 터나갈 것이다.

이렇게 열이틀이 저물고 비행기에 오르니 자정 넘어 열사흘이 되었다. 모두들 짚단마냥 풀썩 쓰러진다. 빳빳하던 긴장이 풀리니 아니 그렇겠는가. 우리 열둘은 하나같이 대한독립군단이었고 민간외교사절이었으며 비나리의 사람들이었다. 자유시참변 96돌 추모 기행은 이제 열둘 모두의 삶에 잊을 수 없는 큰 이정표가 될 것이다. ‘천망회회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 하늘 그물이 듬성듬성 성겨 보여도 빠뜨리는 법은 없다 하였다. 비록 오늘 세상이 뒤집어진 운동장이더라도 때가 되면 역사의 물줄기는 그 운동장을 아예 쓸어버림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자유시참변 96돌 Baikal Irkutsk 비나리

 
 아! 바이칼 !
 스보보드니 너머 이르쿠츠크로! 
 
4350해(2017) 6월24일~7월6일
주관 Svobodny Forum
 
하나>
 
아직도 우린 아무 것도 모릅니다.
우주라는 공갈빵 안에
드문드문 모래알처럼 씹히는 게
우리가 아는 물질의 세계랍니다.
 
그 모래알 안에 미리내라는 티끌이 있는데
그 언저리를 도는 해라는 먼지가 있습니다.
그 먼지에 빌붙어 46억 년 맴도는 아이가 지구랍니다.
 
그 지구의 거죽에서 이따금 거품처럼
물과 불과 흙과 바람이 뒤엉킵니다.
그때마다 헤아릴 수 없는 목숨들이
가뭇없이 피었다가 덧없이 사라집니다.
 
둘>
 
오늘 우리는 바이칼 앞에 섰습니다.
3천만 년 이어온 가장 깊고 넓은
지구마을의 푸른 눈이자 하늘 못.
그 앞에서 인류를 떠올립니다.
 
바다가 멀어지고 얼음추위가 닥친
8만 년 앞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살아남고자 ‘아프리카의 뿔’을 떠났습니다.
 
2만5천 년 앞서 다시 얼음의 날이 닥치며
시나브로 황해는 압록강과 황하가 하나로 만나
큰 강으로 굽이치는 드넓은 풀밭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만 년 가까이 황해 44m 아래 풀밭은
인류문명의 첫 애기 집이 되었습니다.
 
간 돌로 그물추를 삼아 물고기를 잡고
밭 갈아 콩 심고 물 대어 벼를 길렀으며
빗살무늬 뾰족 항아리에 남은 걸 쟁여
집집마다 개들이 보초를 섰으니
이윽고 씨족 공동체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으니
역사시대는 밀물과 함께 밀려들었습니다.
1만 년 앞서 오랜 얼음의 날이 저무니
황해는 다시 바다에 잠겼습니다.
 
풀밭은 저 멀리 달아나
몽골부터 수메르와 이집트에 이르러
기름진 초승달을 빚고
아직 남은 이들은 요하를 발판으로
제정일치의 옥기문명을 일구어냅니다.
 
그 역사시대의 처음을 새긴 ‘초원의 길’
그 들머리에 있었던 천지가 바이칼입니다.
 
셋>
 
이제 우리는 유라시아의 길,
셋째 초원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처음 길을 낸 사람들은 옛 조선입니다.
만주와 몽골 초원을 거쳐 하늘겨레들은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드나들었습니다.
 
그 초원의 길을 따라
바이칼은 코리아로 왔습니다.
부리야트는 북부여로, 코리는 고구려로
하늘겨레의 문명을 이어왔습니다.
 
强漢盛唐이란 생뚱맞은 한족의 말은
그 길을 뺏으려는 몸부림을 뜻합니다.
조선-북부여와 한의 전쟁은,
고구려-발해와 수당의 백년 전쟁은,
수천 년 이어온 유라시아 초원의 길을
만주와 몽골 초원에서 중원으로 돌리려는
문명을 건 세계대전이었습니다.
 
끝내 한족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코리아 덕에 마침내 꿈을 이뤘습니다.
발해를 끝으로 코리아는 제 뿌리인
만주의 언저리로 스스로 사라졌으며
함께 유라시아의 길을 열고자 했던
몽골과 만주의 손길조차 뿌리쳤습니다.
 
하여 쿠빌라이가 북경에 자리 잡은 뒤로
초원의 길은 그 빛을 잃었습니다.
바이칼 또한 빛바랜 옛날이 되었습니다.
 
기후 또한 무릎을 꺾었습니다.
고려 때는 1도가 높아 살기 좋았지만
조선 때는 1도가 낮아 죽을 쑤었습니다.
비록 얼음의 날이 갔다고 믿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넷>
 
바야흐로 우리는 즈믄 해를 돌아
저 바이칼 앞에 다시 섰습니다.
 
짧게는 6백 해, 길게는 9백 해.
어느새 인이 박힌 우물 안 개구리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유라시아 초원의 길과 담 쌓고
고향마저 묻어버린 중화의 제자들은
반만년 코리아 하늘겨레에 위정척사로
식민지라는 첫 선물을 안겼습니다.
 
그 후예들인 스탈린의 제자들은
백색제국주의에 맞선 독립투사들에게
적색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등 뒤에서 칼을 찌르고 끝내
토끼 사냥개마냥 버림받아 죽어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반공 자유민주주의’와 ‘글로벌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와 인권의 공화국’ 대한민국을
침 뱉고 저주하며 마침내 없애려는 그들은
사라진 明에 제사 바치던 소중화주의자들과
숙청되더라도 충성하는 남로당 아이들이
무덤에서 일어선 것이니 이름하여
극우사대종북 부패운동권들입니다.
 
탄핵반란 250일이 넘었습니다.
역도들에게 잔인하게 짓밟히는 조국.
우리들의 마음은 바위보다 무겁습니다.
 
다섯>
 
다시 바이칼 앞에서 옷깃을 여밉니다.
하늘새 까레이가 머물던 곳 바이칼.
부여와 고구려의 태가 묻힌 바이칼.
수천 년 초원의 길을 지키던 바이칼.
 
이 곳은 25만 백군들이 가라앉은 무덤.
이 곳은 대한독립군단의 뿌리마저 삼킨 늪.
이 곳은 까레이스키가 노예로 끌려간 어둠.
이 곳은 신의주 자유의 얼이 사위던 하늘.
 
아! 바이칼이여!
오늘 우리들은 스보보드니 너머
이르쿠츠크로 기꺼이 달려왔습니다.
 
3500 대한독립군단의 희생이
어찌 부질없다 하겠습니까.
님들의 거룩한 발걸음이 계셨기에 오늘
저희들이 이 바이칼에 올 수 있었습니다.
 
이 까레이의 하늘과 거룩한 바이칼
그리고 초원의 길을 걸고 다짐합니다.
 
자유통일 대한민국의 가장 큰 밑천인 한미동맹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탄핵반란을 토벌하고
다음에는 한미가 함께 바이칼을 찾겠습니다.
 
러시아동포 강제이주만행 80돌이 두 달 남았습니다.
역도들에게 떠넘기지 않고 저희들이 기리겠습니다.
 
크라스키노 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톡,
안중근 장군 이상설 어른 최재형 어른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님들의 거룩한 이야기를
연해주 러시아 사람들도 알도록
불을 지펴 밥을 짓겠습니다.
 
하여 마침내 3500 대한독립군단이
대한민국에 되살아나도록 하겠습니다.
젊디젊은 님들과 얼싸안고
자유통일대한민국의 하늘을 열어
셋째 초원의 길을 웃으며 달리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이다.

 

김정은 미래한국 객원기자 webmaster@futurekorea.co.kr

<저작권자 © 미래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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