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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학보다 크다

기사승인 2017.09.12  10: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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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한국·월드뷰 공동기획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기본인권 사상은 유대-기독교의 유산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의 기본 권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불가침한 것이다.

이것은 세계 지성계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며 현대 인류에게 전승된 유산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다. 이 사상이 없었다면 오늘날 인류가 이 정도의 삶의 수준과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요즘 이 두 유산이 위협을 받고 있다. 그 주범은 현대 자연과학에 근거한 과학주의적 사고다. 현대 자연과학은 종교개혁 덕으로 일어날 수 있었는데(R. Hooykaas, K. Jasper) 기독교 덕으로 생겨난 자연과학이 기독교적 유산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서도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것은 생물학이다. 뉴턴 이후로 물질적인 현상은 모두 인과론적으로 설명하게 되었지만 생명체에는 여전히 목적론적 설명이 유지되었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주어진 목적이 있고 생명 현상은 그 목적을 전제로 해야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에 의하여 고유의 목적이 주어졌다는 자연신학의 요소가 숨어 있다.

그러나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을 계기로 생명현상조차도 물질적 현상으로 취급받기 시작했고 자연신학은 힘을 잃고 말았다. 과학의 본성인 환원주의 경향을 자연 현상을 인과론으로 설명하려는 물리주의(physicalism)을 낳았고, 생물학적 현상을 목적론으로 설명하는 시도는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한때 부활할 것처럼 보이던 한의학이 요즘 다시 주춤하고 있는 것도 이런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신의 영역’에 들어가는 과학자들

최근에는 유전공학이란 학문까지 나와서 공학이 생물학에서도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식물, 짐승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인격조차 입맛대로 편집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게 되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명체 자체가 제조되는 것이다. 이미 수 년 전에 화학물질로 스스로 분열할 수 있는 박테리아를 만들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제까지 불신자들조차 ‘신의 영역’이라고 불렀던 곳에 과학자가 진입하게 된 것이다.

최근 의료계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IBM의 대형 컴퓨터 왓슨(Watson)은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의사 못지않게, 오히려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까지 이뤄진 수많은 진단과 처방을 종합하고 취사선택해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낼 뿐 아니라 그것에 근거하여 스스로 새로운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 역시 진단과 치료를 인과론적으로 수행하는 서양의학에 근거한 것이다.

앞으로 그런 진단과 치료가 큰 효과를 거두게 되면 물리주의는 한층 더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질병을 포함한 인간의 병리적 현상을 인과론적으로 설명할 때 심각하게 대두될 수 밖에 없는 문제가 바로 정신현상의 문제이다. 전통적으로는 몸과 마음의 근본은 다른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그 둘 사이의 인과관계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도 과학의 환원주의자들은 정신현상 또한 물리적인 현상의 결과라고 설명하려 한다. 신경물리학이 바로 그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우울증이 약물로 조정되고, 환각제 복용이나 뇌수술이 의식 현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 그런 환원주의가 옳아 보인다.

▲ 이념으로 변질된 물리주의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을 계속 부정한다면 우리는 어느것이 인류에게 더 중요한 지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다.

 

정신도 물질적 작용의 결과인가?

정신현상에 대한 이런 이해가 인간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오랫동안 인류는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인간에게만 영혼 혹은 이성이 있기 때문’(animal rationale - Aristoteles) 혹은 ‘인간만 상징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animal symbolicum – E. Cassirer) 등 정신현상을 그 근거로 삼으며 인간이 짐승과 다르다는 것을 밝혀왔다. 그런데 그 정신현상이 물질적 작용의 결과(effects)라면 인간을 별다르게 평가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1971년에 심리학자 스키너(B. F. Skinner)가 <자유와 존엄성을 넘어서>(Beyond Freedom and Dignity)라는 책을 써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마음이란 몸이나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그 자체로 독립된 것이 아니며, 그의 책 제목이 시사하듯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거나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그럴 만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생물학과 의학 연구의 급진적 결론을 대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책에 대한 언어학자 촘스키(Noam Chomsky)의 비판은 그 책 자체보다 더 많이 알려졌다. 촘스키는 스키너의 급진적 행동주의는 과학적인 것 같지만 과학이론에서 가장 기본적인 ‘가설-연역 방법’(hypothetico-deductive method)을 무시하므로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고 한다.

가설-연역방법이란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가설을 설정한 후 그 가설에서 연역적으로 추론된 상황이 실험을 통해서 실증되는 한에서만 타당하며, 그 가설은 다른 실험을 통해서 부정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모든 이론은 잠정적으로만 옳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학계에서는 학문적 이론에 기본적인 것으로 수용되고 있다. 스키너의 가설은 얼마든지 부정될 수 있고, 그의 행동주의는 과학의 한계를 넘은 하나의 이념이라 해야 할 것이다.

촘스키의 그 비판은 스키너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정신현상을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하고 자유의지를 부정한 모든 이론에 다 적용될 수 있다. 몇 가지의 실험에 통과되었다 해서 그 이론이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경험은 그런 이론적 결론을 수용하지 않는다. 스키너도 아마 자신과 가족들을 물질적 조건에 지배되는 로봇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현상은 과학적 이론으로 설명되고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될 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이념으로 변질된 물리주의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을 계속 부정한다면 우리는 어느 것이 인류에게 더 중요한지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다.

▲ 암스테르담 자유대 철학박사 / 전 동덕여대 총장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webmaster@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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