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여론 사이에서 길 잃은 보수”
원칙과 여론 사이에서 길 잃은 보수”
  •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래한국 편집위
  • 승인 2017.07.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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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여론에서 일컫는 ‘보수세력’은 전임 정부 당시 여당, 그 여당의 노선을 지지했던 유권자와 지식인 집단을 의미한다. 보수세력이 좌절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신(新)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소통의 부재, 상명하달의 계급문화와 시대에 뒤진 근대적 발상으로 인해 전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폭발했다. 소통의 결핍을 느낀 국민들에게 신 정부는 ‘열린 이미지’ 정치로 화답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바르게 구분해야

새로운 인사 관리 방법을 선보이며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무상복지정책도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언론은 지지도에 대해 통계 수치에 대한 과학적 분석보다 흑백 논리로 보도하면서 정권 초기 비판을 자제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전임 정부의 처절한 실수가 보수세력 전부의 위기를 초래했다. 아울러 상대방을 타이르고 논리적으로 이기기 위한 보수세력의 준비가 게을렀다. 전임 정부 여당의 주축 세력이 현재 생계형 정치를 하고 있다. 좌절한 보수세력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도, 따뜻한 독려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국회의원 임기가 3년이나 남아 있지만 보수세력의 개혁은 가로막혔다.

원칙과 여론 사이에서 정책 기조도 흔들린다. 보수 진영은 진보세력과 다른 입장에서 위안부, 사드 배치, 북핵 문제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세력은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내공이 부족해 실패를 자처하고 있다. 신 정부가 정치개혁을 주도하는 분위기는 2018년 지방선거와 개헌논의 시기까지 이어질 것이다.

보수(Conservative)와 우파의 의미는 다르다. 보수란 기존의 질서와 법규를 존중하며 사회의 건전한 변화를 이끌어나간다는 의미이다. 한국 사회의 이념 대결에 희생되어 ‘보수’란 단어가 변화에 인색한 ‘수구’와 ‘적폐’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진보(Liberal)란 기존 정치·경제·사회 체제에 대항해 변혁을 이루려는 성향을 갖는다. ‘사회 발전을 위한 변화의 폭을 어떻게 정하는가?’를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해야 한다. 가장 빠른 혁신을 추구하는 세력은 급진주의(Radical)로 일컬어진다. 반대로 과거 특정 시점을 회고하고 그 당시의 성공 전략을 고집하는 세력을 반동주의(Reactionary)라고 한다.

우파와 좌파는 이념과 가치에 대한 입장으로 구분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보수와 우파, 진보와 좌파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햇볕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보수 혹은 우파로 바라보고, 교육·복지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을 진보 혹은 좌파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안보에 대한 입장을 보수 혹은 진보로 구분하는 것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입장의 차이가 명확하게 구분되도록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 우선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 후 국가 경쟁력을 키워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유주의의 가치에 입각하여 건전한 혁신 보수의 길을 고안해야 한다.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국제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남북통일은 ‘운이 좋으면 일어날 사건’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남북통일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장마당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동맹국과 어떻게 협력하여 선제적·전략적으로 북한을 설득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남북통일의 시점을 좌우한다.  남북통일이라는 본질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대북정책을 제언해야 한다.

대북정책과 한미동맹은 보수의 숙제

아울러 외교·안보 차원에서 동맹 관계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동맹 관계는 생사를 함께하는 군사동맹으로 국제질서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한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지리적으로 근접한 국가 간의 협력 관계다. 서로 다른 외교·안보 목표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을 찾아 국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한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날 동맹 관계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질서가 붕괴되었다. 국가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아울러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지역질서에 매몰되어버린 국수주의 발상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평화시기가 길어지면서 안보여론과 관료조직이 무사안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탈핵, 테러 이슈를 논의할 때 원칙에 입각해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외교·안보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 신 정부의 역할이자 가장 시급한 과제다. 제3자 입장에서 한국 외교·안보 정책이 어떤 국제적 평가를 받는지 파악해야 한다. 북한은 핵 국가로 개헌하면서 핵문제에 대해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북한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국가는 없다. 기회가 되고 북한이 응한다면 대화를 하겠다고 하지만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갈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또한 2008년에 정상적 남북관계 정립과 실질적 관계 발전 추진을 위해 MB정부가 ‘비핵 개방 3000구상’을 제시했다.

북핵문제는 대화로 풀 수 없다

 당시 북한이 핵 동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핵을 포기하기 위한 약속이 아니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오로지 ‘대화’로 핵 동결을 유도한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현재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포기했을 때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시점에서 신 정부가 느슨한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국익에 어긋나는 촉박한 상황에 항상 전쟁을 선포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그 예다. 다른 대안으로 충족할 수 없을 때 북한을 공격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마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국의 군사보복을 자제시켰다. 만약 미국 이익에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힌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과의 마찰을 돌파할 것이다. 최소 2년 내에 미국은 그러한 의지를 다질 수 있다.

집단지성과 소명의식으로 재탄생해야

외교는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와 전략 목표를 분명히 하되, 지닌 힘과 역량에 대해 냉철한 판단에 근거한 네트워크 외교를 펼쳐야 한다. 미래 국제질서에 선제적으로 임하는 국가전략을 지향해야 국가안보전략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이 정도(正道)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논리적 충돌이 일어나 전혀 다른 정책 결과가 초래된다.

이에 더해서 국가안보인프라 강화를 위한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각자의 흥미와 적성에 맞고, 관심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선 인재 양성 단계에서 학생들이 국제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외국인을 상대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인사를 충원하고 재교육을 할 때는 선진 글로벌 마인드를 발휘할 수 있는 토론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동료 간의 협력과 평가를 통해 성장할 수 있어야 하며 외교·국방·정보 조직의 선택과 집중으로 기존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안보 개혁의 관건은 리더십이다. 정부와 시장이 공존해야 하지만 정부를 과신하면 안 된다. 언론, 교육, 공기업, 부동산,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때 일정 부분은 시장에게 맡겨야 한다. 맹목적인 무한경쟁시대가 도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창의력이 결여된 조직문화를 형성하고 예산만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블루오션에서 역동적으로 창업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일자리 문제 해소에 더 효과적이다. 자유롭고 효율적인 시장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질서를 바로 세워줘야 한다.

보수는 안보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무사안일주의부터 극복해야 한다. 그동안의 실패를 바탕으로 집단지성을 형성해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소명의식과 책임의식을 가진 새로운 우파가 탄생해 NGO의 저변을 확충해야 한다. 국가 안보 문제를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민간 자격으로 크게 기여하는 전업 NGO가 탄생해야 한다.

혁신적 보수세력 등장이 관건

보수세력 혹은 우파의 진로를 가름할 세 가지 중간 지표가 있다. 우선 2018년 지방선거 결과를 살펴야 한다. 혁신적 보수세력이 주도적으로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지이다. 개헌 여부와 그 방향성도 중요하다. 개헌 의지를 입법부 권력 강화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개헌이 어려운 것이다.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끝마치고 다시 입법부로 돌아가는 행태로 인해 입법부와 행정부의 분립이 어려웠다.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채찍질이 필요하다. 더 이상 생계형 정치가 이어지지 않도록 비판 세력의 위상도 확보되어야 한다.

보수세력이 내공을 쌓으려면 주변 주요 국가와 전략 관계를 맺어야 한다. 전략과 원칙 없이 북한과 중국을 상대하면 한국이 기회주의 국가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 국가안보와 생존을 위해 필요한 한미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중국·러시아와 어떤 이해관계를 이끌어낼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국가전략이다. 냉철하게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효과적인 복지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경제적·사회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지원해줄 수는 없다. 적은 지원금을 미래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습관적으로 지원금만을 꾀하는 사람도 있다. 보편적 복지와 차별적 복지를 흑백 논리로 나눌 수 없다.

하지만 복지정책이 오히려 격차를 벌리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민영화가 모든 문제의 답이 아니다.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인재가 관료로 등용되어 새로운 발상, 유연한 기획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면 새로운 영역의 수요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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