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좌표는 있는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좌표는 있는가?
  • 황신준 상지대 교수
  • 승인 2017.05.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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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사태 와중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전격적으로 새로운 정권이 등장했다. 정상적인 대선이었다면 유력 정당과 후보들이 집권공약과 후보 자질을 중심으로 약 1년 정도 혹독한 검증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사실상 지난 6개월 간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유권자들은 각 정당의 공약과 정책에 관해 깊이 있게 비교 분석하거나 심도 있게 평가해 볼 기회가 없었고, 그것을 대신해 줄 수준 높은 언론이나 전문가 집단을 접할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 후 2개월 동안 진행된 공식 선거 기간에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비록 국민들의 ‘탄핵찬성 여론이 80퍼센트에 가까웠고 그것이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배경이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정권이 모든 분야에서 백지수표를 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점은 집권세력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며, 또한 국민들도 이 정권의 국정 운영에 관해 철저한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는 어디로 가면 안 되는지 등에 관해서 몇 가지 짚어보려고 한다.

공약에 비친 경제정책

아직 본격적인 국정 운영이 시작되기 전이므로 우선 문재인 후보 시절의 공약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공식적 대선공약집에 의하면 4대 비전 12가지 약속으로 국정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4대 비전으로 ‘촛불혁명’ 완성과 주권재민, 더불어 성장, 평화와 안보, 지속가능사회를 설정했고, 각 비전에 대해 2~5개씩 모두 12개의 약속을 나열했다.

▲ 문재인대통령 취임 이틀째인 11일 오전 서울광화문광장에서 여성·비정규직 임금차별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 연합

부정부패 척결, 인권, 공정사회, 평화, 안보, 성평등, 문화, 복지, 평등, 출산장려 및 노후보장 등 10개는 주로 사회정책이라 할 수 있고, 협의의 경제정책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제고 등 2개 정도가 있다. 총론적 방향 제시만 놓고 보면 다른 주요 정당 후보들의 공약과 대동소이하며,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공약집 제목인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무슨 획기적인 그랜드 디자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경제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대선에서 공통적인 핵심 이슈는 1)일자리 2)경제성장 3)소득분배의 개선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선진 산업사회 많은 국가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선거운동 기간 모든 후보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여 실업(청년실업)을 해결하고,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경제성장률을 제고하고, 소득분배를 개선시켜 이른바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공약집에도 이 세 가지 사항에 관해 구체적인 세부 정책들이 나열식으로 열거되었고, 그 정책에 소요되는 5개년 재원 170조 원을 재정개혁과 세수증대를 통해 조달하겠다는 연도별 계획이 제시돼 있다. 이중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이라는 목표는 재정을 투입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므로 가시적 성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기타 경제성장률이라든지 소득분배 개선 목표 등은 그 달성 여부를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경제구조의 변화, 일자리는 줄어

(청년)일자리 문제, 장기적 저성장의 문제, 소득불평등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문제들이 나타나게 된 시대적 배경과 국가별 특성 등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일자리 부족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보자. 20세기 후반부터 선진 산업사회의 중심으로부터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글로벌 기술혁신(IT혁명, 바이오혁명,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전통적 일자리는 감축되는 경향이 강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기까지는 조정시차(time-lag)가 꽤 있어서, 이 일자리 문제는 단기적 처방으로 신속하게 해결하기 어려우며, 이 시차를 되도록 신속하게 줄여 나가도록 교육.훈련 시스템을 과감하고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데 국가역량을 집중하라는 것이 주류 경제학자들의 일반적인 권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소방, 경찰, 사회복지, 육아 등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은 사회복지 정책의 확대에 따른 단순하고 한시적인 정책일 뿐이지,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글로벌 기술혁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만성적 구조적 일자리 부족에 대한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

민간부문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로 50만 개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겠다는 공약도 제시되었는데, 유럽 몇 나라에서 시도하려던 일자리 나누기(Job-sharing)을 모방한 정책이다. 인구 소국이고 노사협력 체제의 전통이 아주 오래된 네덜란드에서만 장기 불황기에 한시적으로 채택되었지, 나머지 유럽에서는 성공한 사례가 별로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저임금 수준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노동비용 부담이 문제인지라 일자리 나누기는 노동비용의 증가를 의미하므로 실행이 매우 어려운 정책이다.

또한 대기업의 경우도 과연 노조가 얼마나 일자리 나누기에 협조할지도 의문이고, 이미 임금 수준이 상당히 높은 대기업에서 일자리 나누기는 노동비용의 과도한 추가부담이 될 것이 틀림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일자리 나누기는 현실성도 별로 없고, 이미 하락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위 ‘양질의 일자리’, 즉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고임금 및 노동시장 경직성이 야기하는 높은 노동비용을 못 견뎌서 국내기업이 국내투자를 기피하고 해외로 공장을 옮기기 때문이며, 급속하게 진행된 정규직 고용의 과보호 규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어느 정도 합리적인 수준으로 이러한 규제를 완화하려고 지난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했으나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 하고 말았다. 새로운 집권당의 공약집에 이러한 노동개혁 어젠다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일자리는 경제성장과 함께

일자리 문제와 연계된, 아니 일자리 문제의 보다 근원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저성장 문제에 관해 살펴보자. 새 집권당 공약집에 들어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 정책은 4차 산업혁명 지원, 새로운 미래산업 육성(전기차, 드론, 제약.바이오.의료기 산업 등) 등이다. 포용적 성장을 위한 ‘사회적 경제’ 지원도 새로운 성장동력 정책에 포함되어 있다.

후자의 경우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이 시장경쟁력을 갖춘 기업도 아닌데, 이것이 어떻게 미래 성장동력을 담보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전자의 경우에도 미래산업 분야를 열거식으로 선정했다는 정도의 의미는 있지만, 이 분야에서 굴지의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출현하도록 하겠다는 것인지 그럴듯한 그랜드 플랜이 들어 있지 않다.

바이오산업이 미래성장 동력 육성정책 분야로 선정되어 있으니 짚고 넘어갈 사안이 있다. 사실 삼성그룹은 일찍이 2010년대 초에 제약.바이오 산업을 미래 성장분야로 선정해 세계 최대규모의 바이오시밀러 위탁생산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송도 신도시에 설립했다.

자기자본 3조 원이 넘는 이 세계적 기업이 코스피 상장 시 특혜를 받았다는 등,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시 기업가치를 과대평가 했다는 등 마치 무슨 비리가 있는 것처럼 일부에서 의혹과 비난이 난무했는데, 당시 야권도 이러한 공격에 동참했다. 역량 있는 민간의 창업 이니셔티브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것이 선언적 정책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사실 일자리와 성장, 그리고 소득분배의 불평등 문제는 상호 연관 관계가 깊다. 이제 이 문제들을 총괄적으로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국 경제의 현 발전단계를 간략하게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전까지는 농업으로부터 사람과 자원이 전면적으로 산업부문으로 옮겨 가는 이른바 ‘외연적 성장’을 수행했다.

정부가 산업화의 그랜드 디자인과 투자 재원을 선도적으로 조달하고,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전사회적 분업체제를 구축했으며, 국가가 혁신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은 세계시장의 경쟁에서 나름대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국가의 혁신체제는 슘페터가 말하는 모방자(또는 fast follower) 체제였다. 그러다가 이 체제는 모방자의 이점이 다 소진되고, 혁신자(fast mover) 체제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 해 1997년에 외환위기를 당했다. 한국 경제는 그 후 혁신자로 상승한 우량 기업집단과 그렇지 못 해 정체하거나 심지어 몰락하는 취약한 기업집단으로 양분되었다.

현재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선도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혁신자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한 기업들이다. 삼성전자, 현대차, LG화학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이들은 세계시장에서 소니(Sony), 노키아(Nokia), 모토롤라(Motorola), 파나소닉(Panasonic), 도시바(Toshiba), 푸조(Peugot) 같은 난공불락이라고 여겼던 세계적 경쟁기업들을 무너뜨리거나 제치고 일류기업으로 우뚝 섰다.

한국 경제가 이처럼 새로운 단계로 전환되고 있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양극화’나 ‘불평등’의 심화가 부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오늘날 경제활동이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되고, 그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 및 그 CEO의 성공은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교수도 자신의 저서<위대한 탈출>에서 오늘날 미국의 최상위 소득계층의 소득점유율이 급증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글로벌 CEO들의 출현이 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이러한 격차는 CEO 공급 증가를 자극할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그것을 완화시키게 될 것이다.

한국도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부분적인 사회정책은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득불평등이나 소위 양극화 현상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무슨 숙명적인 체제내적 병리현상으로 취급한다면 이는 자유시장경제를 부당하게 적대시하는 오류를 야기할 것이다.

새정부 경제정책은 시장 이해 위에서

새로운 정부는 한국 경제의 발전 프로세스에 대해 깊이 이해를 하고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난 50여 년 동안 세계시장에 진출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국의 최고 기업들이 국내 분업체제의 정점에 서서 거미줄 같은 산업연관 관계를 통해 한국의 모든 산업과 기업들을 이끌어 왔다.

물론 세계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이 재벌 기업만은 아니다. 현재 한국형 히든 챔피언인 ‘월드 클래스 300’ 기업에 231개의 중소기업이 선정되어 있다. 세계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류 재벌기업 또는 월드 클래스 300 같은 기업들을 이른바 ‘개발연대’ 시대의 재벌을 보는 시각으로 보면서, 기업의 ‘양극화’니, ‘경제력 집중’이니 하고 비난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이다.

끝으로 새로운 정부가 유념해야 할 정책 분야를 하나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한다. 미국이나 일본의 2~3배가 넘는다. 그러므로 정부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기업이 경쟁 기업이나 특정 국가의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국가가 전방위로 외교, 통상 역량을 다 쏟아 부어야 한다. 자유시장, 자유무역은 모두 강력한 국가(nation, national state)의 권력을 당연한 전제조건으로 한다.

2002 동계올림픽 쇼트트랙과 2012 올림픽 펜싱 경기에서 우리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서 싸웠는데, 억울하게 심판의 부당한 판정하나로 승리를 빼앗기는 것을 봤다. 경쟁 기업 또는 특정 국가가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 국가가 한다는 일이 겨우 우리 기업에게 세계시장에서 열심히 경쟁하라고 말만 하는 것이라면 되겠는가. 국가의 역할은 바로 역량을 총동원해서 그런 불법을 막아줘야 한다. 경제용어로 통상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새 정부의 공약에 이러한 의미의 통상정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최근 저서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에서 한국 정부의 국익(통상이익 포함) 수호 전략 부재를 숨김없이 고발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직속 무역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중국의 무역질서 및 경제질서 위반에 대한 처벌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피터 나바로 교수는 저서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에서 중국은 왜 자유시장 국가로서 자격미달이고 어떤 불법들을 자행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중국의 엄청난 수의 공장이 내뿜는 오염물질들이 한국과 일본에 피해를 주고 있으며, 그 미세먼지는 미국 서부 해안 도시에까지 날아온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미세먼지의 피해가 해가 갈수록 재앙처럼 커지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에 대해 중국에 국제 환경기준을 준수하라고 항의한 적이 없다.

서해 어장에서는 오늘도 중국 어선들이 불법 조업을 하고 있고, 사드 배치에 대한 항의로 불법적인 경제조치를 남발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강력하게 항의를 하거나 WTO에 제소 한 번 한 적이 없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든다는 새 정부의 공약집에도 이러한 나라의 기본적인 행동 의무는 찾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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