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유럽축구 성공 방정식
손흥민의 유럽축구 성공 방정식
  • 미래한국
  • 승인 2015.10.12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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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구의 스포츠 세상만사]

손흥민의 유럽 무대 도전을 보면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대한민국을 지금까지 존재하게 만들었던 장점과 덕목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미래한국 편집위원

손흥민이 세계 최고의 축구시장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의 토트넘(Tottenham Hotspur)으로 이적하여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영국 현지에서는 손세이셔널(Sonsational) 이외에도 손날두(Sonaldo), 손 오브 갓(Son of God) 등의 별명을 붙여가며 팬들의 지지가 뜨겁다. 

손흥민은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두 골에 이어 이청용이 속한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9월 20일 프리미어리그 6라운드 경기인 홈 데뷔전에서 1 대 0으로 승리하는 결승골을 넣어 이적료 400억 원을 투자한 구단의 결정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선수 랭킹에서도 EPL 데뷔 직후 313위였던 것이 이 경기 이후 141위가 오른 172위로 상승했다. 프리미어리그 선배들인 기성용 261위, 이청용 355위와 비교하면 초반 기세가 대단하다. 

특히 크리스탈 팰리스 경기에서의 골 장면은 침투 패스를 받아 30m 드리블에 이어 수비수 세 명 사이에서 왼발로 정확하게 슛을 날린 것이었다. 이는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에서 활약할 때의 자신의 스타일, 즉 치달(치고달리기)이 EPL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사실 몇 번의 잘 맞힌 슈팅을 제외하고는 동료들과의 호흡이 잘 맞았다거나 패스가 잘 넘어왔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었던 게임이었다. 오히려 지난 두 게임에서부터 계속 바뀐 포지션 탓인지 자리가 애매해 걸어 다니거나, 본인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타이밍에 패스가 오지 않아 좌절감을 표시하는 몸동작이 수차례 보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몇 번의 찬스 가운데 한번을 제대로 살려 존재감을 입증했다. 새로운 팀에서 기존 선수들과의 교감이 형성되지 않은, 어쩌면 약간의 견제가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나 몰라라 하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해내는 모습이 유럽 무대에서의 성공 방정식이다. 

손흥민의 도전과 좌절: 지나치게 튀는, 때로는 지나치게 이기적인… 

이 모습을 보면서 대비되는 기억은 2010~11년 즈음 손흥민이 대표팀에 처음 합류할 때의 모습이다. 손흥민은 2010년 12월 30일 시리아와의 평가전 후반전 김보경과 교체 출장으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2011년 1월 18일 AFC 아시안컵 인도와의 경기 후반 36분 A매치 첫 골을 기록했다. 

그 무렵 손흥민에게는 대표팀 내에서 “적응을 잘 못한다”는 평가가 있었다. 함부르크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흥민은 대표팀 경기만 오면 공을 잡고 머뭇머뭇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손흥민의 경기 스타일(장점)은 찬스가 났을 때 전방의 빈 공간으로 드리블해 나가서 수비수 두세 명 달고서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양발을 사용, 순도 높은 슈팅으로 골을 결정짓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국가대표 팀에서는 막내가 혼자 드리블하고 골 욕심 내는 것이 정서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특히 ‘원 팀’을 강조했던 홍명보 감독 체제의 한국 대표팀 기조 상 둥글둥글함 보다는 자신의 뾰족한 장점을 발휘하는 스타일의 손흥민은 지나치게 튀는, 때로는 지나치게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 보였을 수 있다. 

▲ 손흥민의 유럽에서의 성공은 개인의 능력과 차별화가 극대화되어 그것들이 예측되지 않는 개별성의 조화를 이뤄내는 유럽식 조직 문화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결국 한국식 축구에 적응이 잘 안 된다는 평가와 함께 런던 올림픽 대표에 선발되지 못했다. 조직 논리상 전체의 패턴과 템포에 맞지 않는 개인의 재능과 개성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우리식 집단주의의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이에 반해 지금의, 그리고 지금까지 손흥민의 유럽에서의 활약은 개인의 능력과 차별화가 극대화되어 그것들이 예측되지 않는 개별성의 조화를 이뤄내는 유럽식 조직 문화에 적응한 결과로 보인다. 

지난 8월 AFC 투비즈의 시즌 개막전 참관과 필자가 운영하는 스포티즌이 제작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KBS2 TV 리얼리티 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격려 차 벨기에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마침 한국 축구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유소년과 미래 세대 육성 프로그램으로 정평이 난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를 순회 출장 중인 대한축구협회의 이용수 경기위원장과 왕년의 캐논 슈터 황보관 국장을 현지에서 만났다. 필자는 벨기에 축구팀을 소유한 한국 회사로서 대한축구협회 멤버들과 벨기에 축구협회 측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한국 선수는 기술은 뛰어나나 선수들의 본능이 보이지 않는다 

벨기에는 현재 FIFA 세계 랭킹 2위다. 그 주역은 AFC 투비즈 출신으로 첼시FC의 에당 아자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펠라이니, 맨체스터 시티의 뱅상 콤파니 등 세계 최고 클럽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소위 벨기에의 ‘골든 에이지’들이다. 그들을 키워낸 벨기에 축구협회의 전설적인 코치 크리스 반 퓨벨데(이하 크리스)와 벨기에 축구의 오늘을 만든 비결에 대해 토론이 시작되었다. 

크리스가 올해 초부터 AFC 투비즈 코치로 와 있는 김은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은중은 동갑내기인 전북의 이동국에 이어 K리그에서 공격 포인트를 두 번째로 많이 기록한 레전드 스트라이커이다.

질문 내용은 게임 중 공격 상황, 특히 득점 찬스에서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느냐는 것이었다. 김은중은 공격이 성공적이든 그렇지 않든 감독을 쳐다본다고 답했다.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본인의 플레이에 대해 감독과 벤치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다고…. 

크리스는 벨기에 축구가 한때 세계 랭킹 20~30위권까지 떨어졌다가 세계 2위로 상승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벨기에 축구협회와 스포츠 당국은 축구 지도자뿐 아니라 교육학자, 심리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 탁월한 축구 선수를 키워내는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축구는 기술과 체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전까지는 축구를 가르쳤다면 이 연구가 이뤄진 이후부터는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축구 코칭에 다양한 접근들이 등장했다. 예를 들면 아동의 발달단계를 고려, 연령별로 어린이가 나와 타인을 한꺼번에 인지할 수 있는 수를 분석하여, 6세까지는 시합을 시키더라도 2:2 이상은 시키지 않고, 8세까지는 4:4 이상은 시키지 않는 등 매뉴얼을 마련했다. 

우리나라 유소년 축구 교육 현장에 가보면 6~7세 어린이들의 훈련장에 공 하나를 놓고 7~8명 이상이 한 편이 되어 먹이 쫓는 병아리 떼 같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부모들이 보기에는 귀엽고 좋을지 몰라도 교육적으로 보면 시간 낭비다. 아이들이 공을 만질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 좌절감을 주고 흥미를 떨어뜨려 훈련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어린이들 시합 현장에 가보면 감독은 물론 부모들까지 사이드라인 바깥에서 소리를 지르며 지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지는 않으나 여전히 언어 폭력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며 질책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어떤 팀에서는 지도자가 선수들을 모아놓고 얘기하면 어느 선수도 지도자와 눈을 맞추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벨기에 축구 현장에서는 사소한 연습 경기라도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에게 계속 지시하는 것이 매뉴얼로 금지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한 순간 선수의 판단이 틀릴지라도 그것이 교육적으로는 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지시를 받는 선수는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판단을 미루고 가장 안전하고 소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연구 결과다. 한국 축구를 본 유럽 지도자들의 공통된 코멘트는 기술은 뛰어나나 그 기술을 쓰는 선수들의 본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예측할 수 없는, 순간적으로 창의적인 동작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한다.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크리스가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코칭 방법론은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대방을 제치는 기술을 가르칠 때 먼저 감독이나 코치가 특정 기술을 보여주고 그것을 반복 훈련해서 몸에 익히도록 한다. 그대로 따라 하지 못하면 지적을 당하고 야단을 맞는 게 한국식 코칭 방식이다. 

크리스의 방법은 수비수 한 명을 뚫고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는 것이다. 이런 미션을 받은 선수는 이런 저런 방법을 써서 시도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성공과 약간의 좌절을 맛보게 된다.

이때 선수는 코치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 선수를 더 잘 제칠 수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 코치는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선수가 어떤 시도를 무슨 의도를 가지고 했는지, 그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인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런 토론을 통해 선수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 내도록 돕는 것이 그의 코칭 철학이다. 

선수에게 지시하고 그것을 반복 훈련시키는 방식은 코치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을 전수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실전 상황에 부딪쳤을 때 문제 해결능력을 키울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그 코치가 상상할 수 없는 기술이나 동작, 발상을 하는 ‘천재’의 등장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손흥민에 이어 또 한 명의 기대주 이승우(바르셀로나 유스팀 소속)도 유사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1998년생으로 손흥민보다 6살 아래인 이승우도 인터뷰 때의 자신감 넘치는 표현, 튀는 머리 색깔, 공을 잡으면 두세 명 수비수를 제쳐가며 해결하려는 ‘욕심’으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관점을 달리해 보면 자신감은 축구 선수, 특히 공격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경기에 앞서 팀의 대표 공격수가 상대편은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 같다고 신념에 차서 인터뷰 하는 것은 게임을 이기기 위한 필수조건일지도 모른다.

피부와 눈동자, 머리색이 다 같은 한국적 환경이어서 그런지 머리색이 다르고 외양이 튀면 좋지 못한 것으로 취급받는 분위기에서 스스로에 대한 표현 능력을 키우고 개성을 발전시켜 상상도 하지 못하는 수준의 기술과 창의력이 나올 수 있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에게는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지도 않는다. 자신만의 장점을 결정적인 순간에 추호의 망설임 없이 발휘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는 자에게는 엄청난 영광과 보상이 주어지고, 실패하는 자는 잊혀진다. 소수의 천재가 정점에 서서 나머지 99%를 끌고 간다. 아무도 리스크를 지지 않는 어중간한 판단과, 관계를 고려한 배려는 모두를 이류 삼류로 만든다. 

실패를 감수하는 과감한 시도가 넘어서지 못할 것 같았던 상대를 넘어서게 만든다. 책임도 크지만, 성공하면 시대를 바꿀 수 있다. 한국인 손흥민의 유럽 무대 도전을 보면서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대한민국을 지금까지 존재하게 만들었던 장점과 덕목이 어쩌면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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